제악해독의(祭嶽海瀆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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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국가 제사 중,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큰 산과 바다 및 큰 강에 제사를 지내 풍년과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던 의식.

개설

국가의 제사를 받는 자연물 가운데 땅에 속한 것을 ‘지기(地祇)’라 하고, 지기에 올리는 의례를 ‘제(祭)’라고 한다. 큰 산과 바다와 큰 강 즉 악(嶽)·해(海)·독(瀆)에 대한 제사는 서운관(書雲觀)에서 매년 2차례 음력 2월과 8월의 길한 날을 가려 예조(禮曹)에 보고하면 예조에서 시행하였다. 기내(畿內) 즉 도성에서 가까운 경기도 일대에 위치한 악과 독에는 신에게 잔을 올리는 헌관(獻官)으로 조정의 관원을 파견하였다. 그 이외의 지역에는 소재지의 감사(監司)와 각 관청의 수령(守令)이 때를 맞춰 제사하고 조정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의 국가 제사는 규모에 따라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로 나뉘었는데, 제악해독의는 중사에 속하였다가 대한제국 시기에 소사로 강등되었다.

연원 및 변천

고려시대에는 산천의 등급을 정하여 대사·중사·소사로 나누지 않고 산천에 봉작(封爵)하고 제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 들어 1413년(태종 13)에 예조에서 고려시대의 이러한 관행을 비판하고, 중국의 당나라와 송나라의 제도에 따라 산천의 봉작을 없애고 경내(境內)의 산천을 등급에 따라 나누기를 청하였다(『태종실록』 13년 6월 8일). 1414년(태종 14)에 명산대천(名山大川)과 여러 산천을 분류하여 4악·3해·6독으로 지정하고 제사의 등급은 중사로 정하였다(『태종실록』 14년 8월 21일). 『세종실록』 「오례」에는 여기에 두만강을 더하여 4악·3해·7독을 지정하였으나, 중국의 천자가 5악·4진·4해·4독의 체제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산천을 방위에 따라 분류하여 4악·3해·4독의 체제로 운용하였다.

이후 고종 때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천하의 명산대천을 책봉하여 5악·5진·4해·4독으로 고치고, 제사의 등급은 소사로 내렸다. 이후 1908년(융희 2)에 발효된 칙령 제50호 향사이정건(享祀釐正件)에 따라 악·진·해·독에 대한 제사는 폐지되었다.

절차 및 내용

제사는 해당 악·해·독의 소재지에 설치한 제단에서 거행하였으며, 신위는 모악지신(某嶽之神), 모해지신(某海之神), 모독지신(某瀆之神)으로 칭하였다. 악·해·독의 소재지와, 제사를 지낼 때 신에게 올린 폐백은 다음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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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의례를 거행하기 전의 준비 과정과 당일의 의례 절차로 구분된다. 준비 과정은 재계(齋戒), 진설(陳設), 성생기(省牲器) 등이고, 당일의 의례는 사배례(四拜禮), 전폐(奠幣), 삼헌(三獻), 음복수조(飮福受胙), 철변두(徹籩豆), 망예(望瘞)의 순서로 진행된다.

재계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하는 일을 말하는데, 예조의 요청에 따라 5일 동안 행한다. 3일 동안은 산재(散齋)라 하여 평소처럼 일하면서 음식과 행동을 삼가고, 2일 동안은 치재(致齋)라 하여 오직 제사와 관련된 일만 행한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제악해독의 재계). 진설은 제사 2일 전에 제단을 청소하고 제사에 사용할 집기 및 그것을 보관할 장막을 설치하는 일과, 제사 하루 전에 제사에 참석할 사람들의 자리와 의례를 행할 자리를 정하고 신위를 놓아두는 신좌(神座)를 설치하는 일 등을 말한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의식 제악해독의 진설). 성생기는 제사에 사용할 희생과 음식을 담는 찬구(饌具)가 합당한지 살펴보고, 희생을 잡는 일을 가리킨다.

제사 당일에는 축시(丑時) 5각(刻) 전에 신위판을 설치하고, 제사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과 헌관은 축시 전에 정해진 자리로 나아간다. 헌관이 자리에서 4번 절하면 참석자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4번 절하며 신을 맞이하는데, 이를 사배례라고 한다.

전폐는 헌관이 향을 3번 올린 뒤 미리 준비한 폐백을 신위 앞에 놓는 일을 말한다. 폐백은 자의 한 종류인 조례기척(造禮器尺)을 기준으로 1장 8척 길이의 저포를 올린다. 큰 산과 바다에는 각 방위에 해당하는 색을, 큰 강에는 방위와 상관없이 모두 검은색의 저포를 올린다(『세종실록』 오례 길례 서례 폐백). 삼헌은 신에게 술잔을 3차례 올리는 일을 가리킨다. 첫 번째 잔을 올리는 것을 초헌, 두 번째를 아헌, 세 번째를 종헌이라 하고, 잔을 올리는 재관(齋官)을 차례로 초헌관(初獻官), 아헌관(亞獻官), 종헌관(終獻官)이라고 한다. 대개 첫 번째 잔을 올린 뒤 축문을 읽는다.

제사에 올린 술은 복주(福酒), 고기는 조육(胙肉)이라고 하는데, 헌관이 복주를 받아서 마시고 조육을 받는 절차를 음복수조라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신을 모시고 경건하게 예를 행한 뒤 복을 받는 절차이다. 음복수조가 끝나면 모신 신을 돌려보낸다는 의미에서 철변두를 행한다. 철변두는 제기인 ‘변(籩)’과 ‘두(豆)’를 거둔다는 뜻이지만, 실제 의례에서는 변과 두를 조금씩 움직여 놓는다. 그런 다음 헌관이 4번 절하여 송신(送神)의 절차를 마치면, 큰 산의 경우 제사에 사용한 축판과 폐백을 미리 준비한 구덩이에 묻는데 이를 망예라고 한다. 구덩이의 흙을 반쯤 덮으면 헌관이 먼저 퇴장하고, 이후 다른 참석자들도 4번 절하고 나간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 김해영, 『조선 초기 제사전례 연구』, 집문당, 2003.
  • 이욱, 「근대국가의 모색과 국가의례의 변화-1894~1908년 국가제사의 변화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9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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