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雜菜)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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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잡채 |
한글표제 | 잡채 |
한자표제 | 雜菜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음식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주영하 |
재료 | 채소, 겨자즙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잡채(雜菜)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29년 11월 2일, 『세종실록』 18년 8월 25일 |
여러 가지 채소를 길게 채 썰어 겨자즙으로 무친 음식.
개설
여러 가지 채소를 길게 채 썰어 겨자즙으로 무친 음식이다. 조선시대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으며 양조간장으로 양념을 하지 않았다. 후추·참기름·진간장을 밀가루에 섞어서 만든 즙으로 버무리기도 했다.
만드는 법
장계향(張桂香)의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 잡채 만드는 법이 나온다. 오이·무·댓무우(무의 한 종류)·참버섯·석이버섯·표고버섯·송이버섯·숙주나물은 생으로, 도라지·거여목·박고지·냉이·미나리·파·두릅·고사리·승검초·동아가지·날꿩고기는 삶아 실처럼 가늘게 썬 것에 말린 생강과 식초에 절인 생강, 그리고 후추·참기름·진간장을 밀가루에 섞어서 만든 즙으로 무쳐 만든다고 했다.
1800년대 중엽에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한글 필사본 요리책 『규곤요람(閨壼要覽)』에는 한자로 ‘잡채법(雜菜法)’이라 적고 만드는 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잡채라 숙주나물은 거두절미하고 미나리는 숙주 길이만큼 썰고, 곤자손이와 소의 위인 양을 삶아 같이 채 썰고, 파 데쳐서 채 썰고 갖은 고명을 얹는데 육회 채 썰고 볶아서 각 재료를 모두 한데 섞어 무치고, 계란 부쳐 가늘게 채 썰어 위에다 뿌리고 잣가루 뿌리고 겨자에 무치느니라.”라고 했다. 곤자손이는 소 대장의 골반 안에 있는 창자의 끝부분을 말한다.
연원 및 용도
잡채는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를 삶아 길게 채를 썬 것에 양념을 한 음식이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었다고 해서 잡채라는 이름이 붙었다. 왕실의 산릉(山陵) 제향(祭享)에 올렸다. 건원릉(健元陵) 이하 여러 산릉의 사시 대향(四時大享)과 정조(正朝)·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동지(冬至)·납향(臘享) 등의 여섯 별제(別祭)에 잡채 다섯 그릇이 올라서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세종실록』 29년 11월 2일), 잡채는 일상적인 음식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왕실의 수라상이나 잔칫상에 잡채가 자주 올랐는데, 1796년(정조 20) 1월에도 화성에 행차를 한 정조는 화성참(華城站)에서 점심 수라상에 잡채 한 그릇을 받았다.
온갖 잡스러운 채소로 만든 음식을 잡채라고도 불렀으며, 잡다한 채소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세종 때 『경험진제방(經驗賑濟方)』에 의거하여 도라지가루 한 숟갈, 잡채 한 줌, 장과 소금 각각 한 숟갈을 타서 이를 달여 먹으면 한 사람의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으니, 실농(失農)한 각 도에 공포하여 시골 백성에게 두루 알리게 하였다(『세종실록』 18년 8월 25일).
참고문헌
- 『규곤요람(閨壼要覽)』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정리의궤(整理儀軌)』
- 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휴머니스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