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해(紫蝦醢)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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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자하해 |
한글표제 | 자하해 |
한자표제 | 紫蝦醢 |
대역어 | 곤쟁이젓 |
동의어 | 감동젓, 감동해(感動醢), 감동해(甘冬醢), 권정해(權停醢), 권정해(權精醢), 노하해(蓾鰕醢), 충정해(充貞醢) |
관련어 | 백하해(白蝦醢)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음식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주영하 |
재료 | 곤쟁이, 소금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자하해(紫蝦醢)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8년 6월 16일, 『세종실록』 6년 7월 8일 |
곤쟁이를 소금에 절인 음식.
개설
곤쟁이를 소금에 절여서 만든 젓갈이다. 곤쟁이는 곤쟁이과에 속하는 작은 새우처럼 보이는 것으로 바다와 민물에서 산다. 맛이 무척 좋다고 하여 감동해(感動醢) 혹은 감동해(甘冬醢)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러 가지 고사로 인해서 권정해(權停醢)·권정해(權精醢)·충정해(充貞醢)·노하해(蓾鰕醢)·백하해(白蝦醢)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드는 법
조선시대 요리책에서 자하해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유중림(柳重臨)이 편찬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는 “자하(紫蝦)는 항상 하는 법에 따라 소금에 절인다.”고 했다. 곤쟁이젓은 주로 경기도와 황해도의 서해에서 만들어 왕실에 바쳤다. 『일성록(日省錄)』에 의하면, 1790년(정조 14)에는 자하·세하(細蝦)·하란(蝦卵)·감동(感動)의 네 가지의 해(醢)가 봉진되었다. 자하해가 많이 사용되면서 이에 대한 구분도 자세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전복이나 소라를 잘게 썬 데나 오이나 무 채 썬 데 자하해를 넣는다고 하였다. 세종 때에는 명나라 사신을 대접하는 영접도감(迎接都監)에 어린 오이를 섞어서 담근 자하해 두 항아리를 보냈다고 하였는데(『세종실록』 8년 6월 16일), 이를 보아 오이에 자하해를 넣는 방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증보산림경제』에서는 항아리에 자하를 한 켜 넣고 잘게 썬 게를 한 켜 넣고 다시 소금을 한 켜 넣는 방식으로 항아리를 가득 채운 다음에 기름종이로 입구를 봉해 땅속에 묻고 습기나 벌레가 끼지 않도록 익힌다고 하였다.
연원 및 용도
1924년에 출판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감동젓’이라고 적고 여러 가지 한자 이름을 적어 두었다. 이 책에 의하면, 감동젓은 곤쟁이젓이다. 당시 해주에서는 굵은 체에 곤쟁이젓을 걸러서 무를 채 쳐서 넣었다가 익혀서 먹었다. 순무젓국찌개에는 별도로 거르지 않고 그냥 넣어도 좋다. 특히 봄이나 가을에 깍두기를 만들 때 넣는다고도 했다. 자하젓을 익혀 둔 항아리 위에는 기름조각이 떠오르는데 이것을 감동유(感動油)라고 부른다. 이것을 떠내어 모았다가 고기를 지져 먹을 때 혹은 육회를 먹을 때 조금 떠서 먹으면 참기름 같고 맛이 달고 고소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자하해는 음식을 만드는 데 좋은 양념 구실을 했다.
자하해는 생선을 먹고 독이 들었을 때 해독제로도 쓰였다. 빙허각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백하해가 곤쟁이젓이며, “복어를 해독하나니라.”라고 했다.
조선에서는 명나라 사신에게 주었는데, 세종 때에 명나라 황제가 요구한 물품 중에 자하해가 들어 있었다(『세종실록』 6년 7월 8일). 문종 때도 명나라 사신이 자하해 세 항아리를 청하였다[『문종실록』 즉위 10월 17일 3번째기사].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곤쟁이젓과 관련된 옛이야기가 나온다. “옛적에 중국 사신(使臣)이 해주를 지나다가 이 젓을 맛보더니 눈물을 흘리고 차마 먹지 못하거늘 조선 관리인 원접사(遠接使)가 그 이유를 묻자, 사신이 말하되 내 노모가 만 리 밖에 계신데 이런 맛을 못 잡수시니 그로 인하여 감동하여 먹지 못하노라 하였다 하기로 감동젓이라 하였나니라.”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 어득강(魚得江)이가 임시변통을 잘하였는데, 친구가 감동젓을 보내자 어득강이 이렇게 보낸 것을 어찌 감동치 아니할까 하고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친구가 답장에서 고의로 임시변통이 너무 심하니 이후는 권도로 정지하라 하였다 하기로 권정젓[權停醢]이라 하였나니라.”고 적었다. 또 “남곤(南袞)과 심정(沈貞)이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를 죽인 고로 남곤·심정을 소인배라 하기로 곤정젓이라 하였나니 두 사람을 미워서 부르나니라.”라는 이야기도 소개했다.
이옥(李鈺)은 자하라고 적지 않고 권정(權精)이라 적고서 당시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산골짜기에 살면서 바닷가에 놀러 간 사람이 물고기의 크고 작음과 좋고 나쁜 것도 모르고 함부로 회(膾)를 많이 먹을 수 있다고 했다가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곤쟁이를 예로 들어 놀렸다. 그러면서 곤쟁이는 새우로 붉으면서 매우 가는 것이라고 했다. 속담에 “곤쟁이 주고 잉어 낚는다.”는 말이 있는데, “적은 자본을 들여 큰 이익을 본다는 뜻”이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규합총서(閨閤叢書)』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 이옥 저·실시학사 고전문학연구회 역, 『완역이옥전집』, 휴머니스트, 200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