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암산성(笠巖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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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장성군 북쪽에 있는 산성으로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거점.

개설

전라도 장성과 정읍 사이에 있는 입암산에 축조된 산성으로 고려시대 처음으로 수축되었다. 1256년(고려 고종 43) 3월 송군비(宋君斐) 등이 이끈 고려군이 몽골군의 공격을 막아낸 곳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중 일본군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체제 정비를 위해 각지의 산성을 정비할 당시 장성현감이귀의 주도로 다시 수축되어 1597년(선조 30)에 완성되었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전라도 지역의 주요 거점의 하나로서 주목되었다.

위치 및 용도

입암산은 장성의 북쪽 40리(약 16㎞)에 있는 산으로 정읍과의 경계에 있다. 이 산은 산세가 높고 험준한 데다 꼭대기가 움푹 들어가서 사방은 높고 가운데는 널찍한 형상을 띠고 있다. 지세를 따라 산성을 축조하였으므로 그 형상이 마치 말의 구유와 같다. 그러므로 밖에서 쳐다보면 아득하고도 엄연하여 그 내부를 바라볼 수 없는 데 비해 안에서는 성 밖의 사면이 모두 한눈에 들어오고 연못과 샘이 많고 수량도 넉넉하였다. 남, 북, 동문 등 세 방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지만 입암(立巖)의 한 방면은 이곳의 요해처인 위령(葦嶺)의 대로를 제압할 수 있으므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산세가 험하고 수량이 풍부하여 전쟁 시 주민을 피난시키고 방어하기에 매우 적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라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남쪽의 적이 북상하는 것을 막기에 용이하였다.

변천 및 현황

입암산성은 고려시대 고려-몽골 전쟁 이후 한동안 관리되지 못하여 임진왜란 당시 성이 허물어진 채 남아 있었다. 1593년(선조 26) 장성현감으로 제수된 이귀가 산성을 수축하고 식량과 무기 등을 비축하여 일본군에 대비하였다. 당시 조선은 일본을 저지하기 위해 각 도의 주요 산성을 정비하였는데 입암산성은 남원의 교룡산성(蛟龍山城), 담양의 금성산성(金城山城), 순천의 건달산성(乾達山城), 강진의 수인산성(修仁山城)과 함께 전라도의 주요 천험의 요새 중 가장 좋은 곳으로 평가받았다(『선조실록』 26년 12월 3일). 이에 방어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입암산성 축조가 시도되었다. 1594년(선조 27) 2월 장성현감이귀는 승려 법견(法堅)에게 이 일을 주관하도록 하였다(『선조실록』 27년 2월 27일). 1597년(선조 30) 입암산성의 수축이 완성되어 정유재란 당시 전라도 지역 주요 거점으로 역할을 하였다. 1653년(효종 4) 개축되어 둘레 2,795보(약 5㎞)의 산성으로 정비되었다. 그러나 산성이 지나치게 넓어서 방어하기에 어려움이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효종실록』 6년 4월 17일). 장성부사가 수성장(守城將)으로 방어를 책임지도록 하였고, 평소 별장(別將) 및 승장(僧將) 1명을 두어 관리하도록 하였다. 이 산성의 소속 고을로는 장성 이외에 광주, 나주, 고창, 정읍, 태인 등 여섯 곳이었다.

형태

1653년 개축되면서 입암산성은 둘레 4,339자(약 1.3㎞), 높이 12자(약 3.6m)에 3,339개소의 성첩(城堞)을 갖추었다. 성곽 시설로는 포루(砲樓) 4, 옹성(甕城) 32, 성문 2, 암문(暗門) 3개소 등을 갖추었다. 이 외에 연못 10, 우물 17개소 등이 있었다.

관련사건 및 일화

1256년(고려 고종 43) 3월 몽골군이 이 일대에 나타나자 이광과 송군비가 영광으로 달려가 길을 나누어 치기로 약속하였으나 몽골군이 이를 알고 방비에 나서게 되었다. 이광은 다시 섬으로 들어가고 송군비는 입암산성에서 농성하였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성안의 장정들은 모두 적에게 투항하고 노약자만 남아 있었다. 송군비가 거짓으로 약한 사람 몇 사람을 성 밖으로 내보내자 몽골군은 성안의 양식이 다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방심하여 성 아래로 접근하였다. 이때 송군비는 정예 군사를 이끌고 기습 공격하여 적을 크게 이겼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백사집(白沙集)』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풍천유향(風泉遺響)』
  •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 이장희, 「임란 중 산성수축과 견벽청야에 대하여」, 『부촌 신연철교수 정년퇴임기념 사학논총』, 일월서각,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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