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裏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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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옷 안에 있는 속옷이나 속바지.

내용

이의(裏衣)는 내의(內衣), 내복(內服), 단의(單衣), 설복(褻服), 친의(襯衣), 츤의라고도 한다. 용도도 다양해서 겨울에는 방한용, 여름에는 땀받이용으로 착용하며, 이외에도 옷의 자태를 우아하게 보이기 위한 맵시용과 내외법에 의해 생겨난 내외용(內外用) 등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흥덕왕 복식금제(服飾禁制)에는 내의(內衣)·내상(內裳)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를 속저고리와 속치마로 보는 견해가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속옷과 관련하여 문릉관고(文綾寬袴), 선군(旋裙), 저의(紵衣), 저상(紵裳) 등의 용어가 나온다.

조선시대로 들어오면 속옷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남자용으로는 상의인 속저고리·속적삼과 하의인 잠방이가 있고, 이와 관련하여 이의·겹고(裌袴)·단고(單袴) 등의 용어가 나온다. 여자의 속옷으로는 속적삼, 가리개용 허리띠, 다리속곳, 속속곳, 고쟁이인 속바지, 단속곳, 대슘치마, 무지기 등 종류뿐만 아니라 쓰이는 직물도 다양해졌다. 1553년(명종 8)에 내관 한 명이 남색 비단으로 속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죄를 물은 일이 있었고(『명종실록』 8년 3월 21일), 1635년(인조 13)에는 비단의 한 종류인 단견(段絹)으로는 속옷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인조실록』 13년 10월 11일).

임진왜란 직후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견직물보다 면직물을 사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나, 점차 사회가 안정되고 청나라와의 교류를 통하여 화려한 직물이 수입됨에 따라 속옷까지 비단으로 만들어 입는 등 사치스런 풍조가 만연하여 사치를 금하는 법령이 자주 내려졌다. 속바지의 이름을 보면 광봉지(廣奉只)·너른바지·단니의(單裡衣)·봉지(奉只)·바지·니의 등의 용어가 나오는데, 합당고인 니의에 개당고인 봉지를 입고 그 위에 다시 단니의를 입었다. 이는 속속곳과 바지, 단속곳을 입는 것과 같다. 그리고 예복용으로 그 위에 다시 속치마 종류들을 입는다.

용례

第五條 大紅入染價重 民間難備 (중략) 今後上自一品下至有蔭子弟及婦女裏衣外 紅色上衣 勿許穿著 其餘各人大小男女衣裳 一皆禁止衣內丹木入染 小紅勿禁(『세종실록』 28년 5월 25일).

참고문헌

  • 박춘순, 『바지의 문화사』, 민속원, 1998.
  • 유희경, 『한국복식사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75.
  • 최은수, 「우리나라 여자바지에 관한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