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보래(以影補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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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정운』에서 영모(影母)인 ‘ㆆ’으로 래모(來母)인 ‘ㄹ’을 보완하도록 한 한자음 표기 방법.

개설

이영보래(以影補來)는 우리말이 아닌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한 원칙 가운데 하나였다. ‘(佛)’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한자음의 운미(韻尾) 즉 음절 받침 자리의 ‘ㄹ’을 ‘ㆆ’으로 보완하여 ‘ㄷ’에 가까운 음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였다.

내용 및 특징

중국 한자음 ‘ㄷ’에 가까운 설내입성(舌內入聲)의 음은 [t] 발음인데, 우리식 한자음에서는 ‘ㄹ’ 음으로 바뀐 예가 많았다. 이를 중국 한자음에 가깝게 되돌리면서도, 우리 한자음의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으려는 절충안이 바로 이영보래였다. 사성(四聲) 가운데 입성은 촉급하게 닫는 소리이므로 발음이 빨리 끝나는 특징이 있다. 지속 자질을 지닌 설음 ‘ㄹ’이 우리 한자음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는데, 갑자기 중국 한자음으로 되돌려서 ‘ㄷ’으로 바꾼다면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절충하여, ‘ㄹ’로 발음하되 ‘ㆆ’으로 막아 빨리 끝나게 하는 이영보래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해례본(解例本) 『훈민정음』의 종성해(終聲解)에서는, 반설음인 ‘ㄹ’은 우리말에서는 쓰이지만 한자음에는 쓰이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입성자인 ‘볃(彆)’의 경우 종성을 ‘ㄷ’으로 쓰는 것이 옳지만, ‘ㄹ’로 읽는 속습(俗習)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ㄷ’이 변하여 가볍게 된 것인데, 만일 ‘별’로 쓴다면 소리가 늘어져서 입성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결국 이영보래는 원래 ‘ㄷ’ 받침인 입성의 한자음이 우리식으로 발음되면서 받침이 ‘ㄹ’로 바뀌어 입성이 아니게 되자, 이를 원음에 가깝게 되돌리기 위해 만든 표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 최초의 운서(韻書)인 『동국정운(東國正韻)』에는 우리식 한자음과 중국 한자음의 발음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이 반영되었다. 『동국정운』에서는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는 당시 우리 한자음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아니라 전탁(全濁) 영모인 ‘ㆆ’, 의모(疑母)인 ‘ㆁ’ 등을 되살린 체계였다. 그 이유는 신숙주(申叔舟)가 『동국정운』「서문(序文)」에서 밝힌 바와 같이 "속음(俗音)에 기인하되 원래 음에 맞도록 바로잡고자" 하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세종실록』 29년 9월 29일).

『동국정운』에 실려 있는 몇 가지 예들을 살펴보면, ‘(熱), (列), (厥), (屈), (弗), (佛), (鬱), ’ 등 ‘ㄹ’ 받침으로 끝나는 한자어에는 모두 이영보래에 따라 ‘ㆆ’이 삽입되어 있으며, 모두 입성자로 분류되어 있다. 이는 당시 중국어 운미의 [t] 발음이 우리말 ‘ㄹ’ 발음으로 규칙적으로 교체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변천

이영보래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볃爲彆’이라는 용례는 보이지만, ‘ㄷ’을 우리말에서는 ‘ㄹ’로 바꾸어 읽는다는 언급만 있고 ‘’에 대한 예는 없기 때문이다. 즉 이영보래는 동국정운식 한자음에만 쓰인 특수한 용법이었다. 물론 ‘배이셔도’와 같이 한글 표기에도 등장하지만, 여기서의 ‘ㆆ’은 동명사형 어미로 사용되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는 실제 우리 한자음과 괴리가 컸으므로 성종 이후 사라지게 된다. 그에 따라 이영보래의 표기 방법 역시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동국정운(東國正韻)』
  • 『훈몽자회(訓蒙字會)』
  • 박종국, 『훈민정음』, 정음사, 1976.
  • 이기문, 『國語史槪說』, 태학사, 1998.
  • 최영애, 『중국어란 무엇인가』, 통나무, 1998.
  • 임동석, 「表音 機能 漢字에 대한 硏究」, 『中國學報』35,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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