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두(利瑪竇)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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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이마두 |
한글표제 | 이마두 |
한자표제 | 利瑪竇 |
동의어 | 마테오리치(MatteoRicci), 서태리선생(西泰利先生) |
관련어 |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 기하원본(幾何原本), 보유역불(補儒易佛), 서학(西學), 정약용(丁若鏞), 천주실의(天主實義) |
분야 | 문화/인문학/서학 |
유형 | 인물 |
지역 | 중국 |
시대 | 명 |
집필자 | 김선희 |
이칭(자,호,봉작호,시호) | 자(字): 서태(西泰) |
성별 | 남자 |
생년/일 | 1552년 10월 6일 |
몰년/일 | 1610년 5월 11일 |
출신지 | 로마 교황령 마체라타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이마두(利瑪竇)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2년 2월 14일 |
16세기 말 명대 중국에 들어와 기독교를 전한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개설
마테오 리치([利瑪竇], Matteo Ricci)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마체라타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명문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1571년 예수회 입회 후 로마의 예수회 대학 콜레지오 로마노에서 수학한 인재였다. 1577년 13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포르투갈의 동방 무역 기지였던 인도의 고아(Goa)에 파견되었으며 이후 1583년 예수회의 중국 선교 전초 기지였던 조경(肇慶, 마카오)에 도착함으로써 중국에 진출하였다. 중국 진출 후 중국인들의 의심을 받으며 여러 번 위태로운 고비를 넘겼지만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결국 1601년 북경에 진출할 수 있었다. 마테오 리치는 처음에는 불교식 승복을 입었지만 곧 유학자의 옷으로 바꾸었고 자신을 서양에서 온 선비[西士]로 소개하는 등 중국인들과 교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그는 중국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직접 중국어를 배워 한문으로 서양 지식을 번역함으로써 중국 전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북경에 정착한 후 중국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서양 지식, 특히 수학과 천문학 등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 황제 신종(神宗)을 비롯한 다양한 상층 인사들과 교류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가 한문으로 저술한 『천주실의(天主實義)』, 『기하원본(幾何原本)』 등의 서학서와 세계지도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는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서양의 종교, 철학, 과학 등의 지식을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을 했다. 마테오 리치는 서양과 동양을 이은 최초의 세계인이었으며 중국과 조선,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과 영향을 준 새로운 사상의 전달자로 평가받는다.
활동 사항
예수회 대학 콜레지오 로마노에서 7년여 동안(1572~1577) 신학은 물론 수사학, 철학, 수학, 유클리드 기하학, 천문학, 지리학 등 당대 최신의 학문을 섭렵한 마테오 리치는 이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기독교의 교리와 스콜라 철학의 핵심 내용을 담은 『천주실의』와 스토아 철학의 윤리학을 담은 『교우론(交友論)』, 『기인십편(畸人十篇)』 등 윤리학과 철학 관련 저술뿐 아니라 유클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수학서 『기하원본』, 천문학적 정보를 담은 『건곤체의(乾坤體義)』,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 등 다양한 분야의 수학과 과학 관련 저술을 남겼다. 또한 그는 명 신종에게 세계 지도와 서양식 악기, 서양식 그림, 자명종 등 서양 문물을 진상하기도 했다.
마테오 리치의 이러한 성과는 조선에도 알려졌다. 정조는 이가환에게 마테오 리치가 수정한 역법이 우수한 까닭을 묻기도 하였다(『정조실록』 2년 2월 14일). 마테오 리치의 활동에는 당시 저명한 관료로써 마테오 리치를 통해 입교한 서광계(徐光啓)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마테오 리치의 전교 방식을 ‘유교를 보완하고 불교를 배척한다’는 ‘보유역불(補儒易佛)’로 설명하여 예수회의 대외적 활동을 변호함으로써 마테오 리치의 중국 활동을 도왔다.
학문과 사상
마테오 리치의 핵심적인 주장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이나 윤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천주실의』에서, 중국의 전통적인 유학과 신유학을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과 고대 스토아 철학 등 서양 철학의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태극, 리 등 신유학의 핵심 개념들을 비판하였으며, 중국 경전에 등장하는 상제(上帝)가 기독교의 신 즉 천주(天主)라고 주장함으로써 기독교가 유교에 위배되는 것이 아님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그의 신유학 비판은 중국과 조선에서 다양한 비판을 받았지만 정약용은 자신의 이론을 세우는 데 마테오 리치의 주장을 원용하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천주실의』, 『교우론』, 『이십오언(二十五言)』, 『서국기법(西國記法)』, 「곤여만국전도」, 『서금곡의(西琴曲意)』, 『기하원본』, 『혼개통헌도설(渾蓋通憲圖說)』, 『건곤체의』, 『동문산지(同文算指)』 등.
묘소
북경 부성(阜城) 책란(柵欄)
참고문헌
- 김선희, 『마테오 리치와 주희 그리고 정약용』, 심산, 2012.
- 임종태, 『17·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 지리학 이해』, 창비, 2012.
- 히라카와 스케히로[平川祐弘], 노영희 역, 『마테오 리치』, 동아시아, 2002.
- 羅光, 『利瑪竇傳』, 台北: 學生書局, 197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