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대신(議政大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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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때 의정부 회의를 주재하고 회의에서 결의한 의안·법령·정책 등을 왕에게 건의하던 의정부의 우두머리.

개설

1894년 6월에 의정부 8아문 체제로 개편하면서 의정부의 최고 책임관으로 의정대신(議政大臣)이 임명되었다. 의정대신은 의정부 회의를 주관하며 각종 의안, 법령 정책을 결정하여 왕에게 아뢰는 책임을 졌다. 1895년 4월에 내각 관제의 시행으로 의정부가 폐지되었으나 1896년 9월에 의정부 관제가 다시 설치되면서 의정대신도 부활하였다. 1898년 6월에 의정부 관제를 다시 개정하여 황제의 권한을 높이는 동시에 의정대신의 역할도 강화하였다. 1907년 6월에 일본에 의해 내각 관제로 개편되면서 의정대신은 폐지되었다.

담당 직무

1894년 6월 28일 1차 갑오개혁에서 의정부 관제를 공포하였다. 이때 의정부 대신의 역할은 백관을 관리하고 여러 방면의 정사(政事)와 국가를 다스린다고 규정하였다. 의정부를 총괄하는 대신은 총리대신(總理大臣)이었다. 1895년 4월 1일 2차 갑오개혁에서는 내각 관제로 개정되어 내각 총리대신으로 불리었다.

1896년 9월 24일에 내각 제도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다시 설치하였다. 의정부는 국가의 중대사에 관한 의결과 행정의 최고 기구로서 의정부의 대표인 의정(議政), 참정을 겸하는 내부·외부·탁지부·군부·법부·학부·농상공부 등 7부의 대신, 무임소(無任所) 장관인 찬정(贊政) 5명, 참찬(參贊) 1명 등 14명으로 구성되었다. 의정은 칙임관이고 정1품이었다. 의정은 정3품의 관리로 참찬을 추천하여 임명할 수 있었다.

의정부에서는 국정의 주요 사항을 의결하였다. 법률과 규칙의 신규 제정·개정·폐지, 외국과의 전쟁 시작이나 강화(講和) 등을 의결하였다. 또한 내란 대책, 전선·철도·광업의 개설, 1개년도 세입·세출의 예산·결산, 예산 외 지출, 조세·각종 잡세·관세의 신설과 증설 등을 토의하여 결정할 수 있었다. 의정부는 상정된 의안에 대하여 토론과 질의·응답을 할 수 있고, 원래 안건과 개정안 등을 충분히 심사할 수 있었다. 찬성과 반대의 수를 즉시 발표하고 의견을 별도로 심사 보고서로 제출할 수 있었다. 또한 의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정부 구성원들의 의견이 같지 않은 경우에는 찬성과 반대의 수, 심사 보고서 등을 작성하여 국왕에 보고하는 주본(奏本)에 첨부하였다. 의정부 회의의 개최와 진행을 주재하는 의정대신은 회의의 결과를 참찬과 함께 서명하였으며, 최종 결정권자인 황제에게 주본으로 올릴 때 황제가 자문하는 것이 있으면 그 의안에 대하여 직접 자세히 보고하였다.

변천

1898년 6월 10일에 칙령 15호로 황제와 의정부의 제반 관리들이 만나서 국정을 논의하는 의정부 차대 규칙을 제정하였다. 의정, 참정, 각부 대신, 각 찬정·참찬이 매주 한 번씩 회동하여 국정을 논의하도록 하였다. 6월 18일의 칙령 18호 개정 의정부 관제에서는 내외 각 칙임관에게 과실이 있을 때에는 의정이 직접 왕에게 아뢰어 죄를 논하는 권한을 새로 설정하여 의정대신의 역할을 강화하였다.

1904년 3월 4일에 칙령 1호로 의정부 관제 개정 안건과, 칙령 2호로 의정부 회의 규정을 개편하였다. 의정의 역할은 참정, 찬정과 각부 대신들을 통솔하여 나라를 경영하고 다스리는 책임을 함께 맡는 것으로 되었다. 또한 온갖 정무에 대하여 아뢰고 집행하는 일은 의정이 주임대신(主任大臣)과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907년 6월 14일에 일본은 대한제국의 최고 행정 기관인 의정부 관제를 폐지하고 내각 관제를 새로 반포하였다. 이에 따라 의정대신은 내각 총리대신으로 바뀌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 『속음청사(續陰晴史)』
  • 『관보(官報)』
  • 『일본외교문서(日本外交文書)』
  • 국사편찬위원회, 『주한 일본공사관 기록』 1~40, 국사편찬위원회, 1986~1994.
  • 송병기·박용옥·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 1~4, 국회도서관, 1970~19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