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銀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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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중 암그루에 열리는 황색의 열매.

개설

조선시대에 나온 유서류 및 조리서를 보면, 은행은 주로 굽거나 볶거나 삶아서 먹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기절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하여 조심하던 식품이다. 궁중잔치에서는 껍질을 깐 은행알을 고여 상에 올리기도 했지만, 주로 열구자탕 즉 신선로나 전골 같은 음식을 만들 때 들어가는 부재료로 쓰였다. 은행은 10월에 종묘 등에 천신(薦新)되며, 중국에 진상되는 물품이기도 했다.

원산지 및 유통

은행은 중국이 원산지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충청도 청주목(淸州牧)의 공물이었다. 10월 종묘 천신에 쓰이는 은행은 『전향사일기(典享司日記)』에 따르면 생문어(生文魚), 생대구어(生大口魚)와 함께 강원도관찰사가 올리도록 되어 있었다. 영조 때의 『선혜청정례(宣惠廳定例)』에 의하면, 10월에 대전(大殿)과 중궁전(中宮殿)에 올리는 은행은 경기감영에서 진상하였다고 한다.

연원 및 용도

『종묘의궤(宗廟儀軌)』의 월별 천신을 보면, 은행은 10월에 올리는 품목이었다. 세종이 은행·배·밤·대추·능금과 같은 과실을 종묘 등에 천신할 때 벌레 먹은 것을 올릴 수도 있으므로, 아예 쪼개거나 깎아서 올리는 것이 예법에 어떠한지 옛 제도를 상고하여 아뢰도록 한 적이 있다. 우의정맹사성(孟思誠) 등은 온전한 실과로 올려야 마땅하다고 아뢰었다. 이에 예조(禮曹) 등에 명하기를 은행 등의 물건은 천진할 때 쪼개어 살펴서 10분의 8, 9분이 벌레 먹지 않았다면 정하게 골라서 올리도록 정하였다(『세종실록』 13년 6월 8일).

종묘 천신에 쓰이는 은행은 껍질째 올랐으나, 진찬(進饌)이나 진연(進宴) 등의 왕실잔치에 고임으로 오르는 은행은 1892년(고종 29)에 편찬한 『[임진]내외진찬등록([壬辰]內外進饌謄錄)』에서 보듯이 실은행(實銀杏)이라 하여 껍질을 깐 은행알맹이를 썼다.

『승정원일기』 1646년(인조 24) 8월 23일의 기사에 따르면, 은행은 9월 초에 제수용(祭需用)으로 생리(生梨) 1천 개, 잣[柏子] 20두, 청밀(淸蜜) 10두와 함께 연례적으로 중국에 진상하던 품목 중 하나였다. 은행은 10두를 보내되 호조(戶曹)에서 준비를 담당하였다.

『승정원일기』 1646년(인조 24) 8월 30일 기사를 보면, 실제로 은행의 상납을 담당했던 것은 경기감사였으며, 은행이 산출되는 고을에 분정(分定)시켜 양질의 것을 골라 모아서 상납한 것을 호조에서 한꺼번에 포장했다고 한다. 이렇게 마련한 은행 등의 물품은 9월 3일 심양으로 보내졌다(『인조실록』 26년 9월 3일).

『승정원일기』 1875년(고종 12) 6월 18일 기사를 보면, 청나라 황후의 진향 제물로 진상할 과실 중에서 개암[榛子]과 은행을 제철이 아니어서 마련할 수 없었는데, 이때 전례(前例)에 따라 개암 대신에 비자(榧子)를, 은행 대신에 연밥[蓮子]을 보내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임진]내외진찬등록([壬辰]內外進饌謄錄)』
  • 『선혜청정례(宣惠廳定例)』
  • 『전향사일기(典享司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