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柚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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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나무에서 열리는 둥근 모양의 껍질이 울퉁불퉁하고 신맛이 나는 열매.

개설

조선시대에 유자는 왕실의 잔치는 물론 천신, 사신의 접대, 신하에 대한 하사품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었다. 유자를 재료로 하여 유자정과, 유자단자, 유자차 등을 만들어 먹었다.

원산지 및 유통

중국이 원산지인 유자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전라도 장흥도호부, 제주목의 토공(土貢)이었다. 다른 감귤류와 달리 제주뿐 아니라 전라도, 거제·고성·남해·진주 등과 같은 경상도의 남쪽 해안에서도 진상하였다. 귤과 유자는 3월에 열매를 맺어 9월에 익기 시작하여 겨울에 따는데, 조선시대에는 감귤류 중에서 금귤(金橘)과 유감(乳柑)과 동정귤(洞庭橘)이 상품이고, 그다음이 감자(柑子)와 청귤(靑橘)이고, 유자와 산귤을 그다음으로 쳤다(『세조실록』 1년 12월 25일). 경상도·전라도 감사가 유자를 진상할 때에는 가지를 붙여서 진상하되, 얼어서 상하지 않도록 봉하여 진상해야 했다(『연산군일기』 3년 10월 4일),(『연산군일기』 10년 11월 28일).

연원 및 용도

『종묘의궤(宗廟儀軌)』의 월별 천신(薦新)을 보면, 유자는 10월에 올리는 제철 산물로서 왕실의 잔치에도 올랐다. 1848년(헌종 14)에 편찬한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에 의하면, 석류 등의 다른 과일과 섞어서 한 그릇에 함께 고이기도 하고, 1901년(광무 5)에 편찬한 『[신축]진연의궤([辛丑]進宴儀軌)』에 의하면 유자만 수백 개를 가지고 1자 이상 쌓아 올리기도 했다.

유자는 선물로도 많이 쓰였다. 왕실에서 중국 사신에게 유자를 나눠 주거나(『세종실록』 16년 10월 25일), 의정부(議政府)·홍문관(弘文館) 등과 같은 관청이나 신하 개인에게 하사하기도 했다(『세조실록』 5년 10월 26일)(『선조실록』 5년 12월 26일)(『선조실록』 8년 1월 8일), (『선조실록』27년 10월 13일).

조선시대에 유자로 만든 음식으로는 유자정과, 유자단과, 유자차 등이 기록상 가장 많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유자차는 『산림경제(山林經濟)』를 비롯해 『농정회요(農政會要)』·『박해통고(博海通攷)』·『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등에 거의 동일한 내용의 만드는 법이 나오는데, 생유자와 좋은 배를 가늘게 채 썰고 꿀물 속에 넣어 잣을 뿌려 마시면 숙취에 좋다는 내용이다.

참고문헌

  • 『농정회요(農政會要)』
  •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
  • 『박해통고(博海通攷)』
  • 『산림경제(山林經濟)』
  • 『[신축]진연의궤([辛丑]進宴儀軌)』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종묘의궤(宗廟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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