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襦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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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겨울에 입는 솜저고리.

내용

동옷·핫옷으로도 불리는 유의(襦衣)는 솜을 넣어서 만든 남자들의 저고리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01년(태종 1)에서 1903년(광무 7)까지 군사에게 유의를 나누어 주라는 기사가 345건 등장한다. 추운 겨울을 대비하여 국가에서 솜옷을 나누어 주는 것은 군인이 솜옷을 자유롭게 만들어서 입을 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1362년(고려 공민왕 12) 문익점(文益漸)이 원나라에서 들여온 목화는 보온성이 뛰어나,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어야 했던 서민에게는 일대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목화솜은 목화에서 씨를 뽑아낸 나머지 섬유질의 물질로, 보통 옷솜이나 이불솜 등으로 사용되었다. 풀솜은 누에고치의 표면에 부착된 터럭을 말하는데, 이를 모아 솜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누에고치를 삶아 만든 명주솜은 보온성도 좋고 가벼웠으나, 가격이 비싸 고급품에 속하였다. 모피나 모직물 등 겨울 옷감이 귀했던 조선시대에는 솜옷이나 누비옷을 개발하여 위로는 왕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바지, 저고리, 버선, 치마는 물론이고 두루마기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하였다. 또 이부자리나 보료, 방석에 이르는 침구에까지 그 용도를 넓혀 나갔다.

용례

氣肅如秋 人着襦衣(『태종실록』 1년 4월 22일).

참고문헌

  • 국립민속박물관, 『문익점과 무명문화』, 국립민속박물관,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