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밀과(油蜜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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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나 쌀가루에 꿀을 넣고 반죽하여 적당한 크기와 모양으로 빚어서 기름에 튀겨 낸 조과류(造果類)의 통칭.

개설

약과와 중박계로 대표되는 조과류를 유밀과(油蜜果)라 한다. 유(油)는 참기름을 지칭하고 밀(蜜)은 꿀이다. 찹쌀가루보다는 밀가루가 더 귀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찹쌀가루로 만든 강정보다 밀가루로 만든 약과나 중박계를 더 귀하게 여겼다.

만드는 법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밀가루로 만든 유밀과의 대표인 약과와 쌀가루로 만든 유밀과의 대표인 강정을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다. 약과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밀가루 10되에 참기름 7홉을 넣고 꿀을 섞어 반죽하여 판에 박아 낸다. 이것을 목판에 담아 젖은 수건으로 덮어 둔다. 번철에 기름 5~6되를 붓고 고부지게 끓인다. 약과를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자주 저어 준다. 빛깔이 검고 누르스름하게 되면 철망으로 건져 뜨거울 때 꿀이 담긴 그릇에 넣는다. 꿀이 흠뻑 배면 건져서 그릇에 세워 담아 꿀물이 빠지게 한다. 약과를 네모지게 하려면 반죽을 되게 해서 썬다. 만두과는 대추씨를 빼고 다진 살, 즉 대추육과 계피를 합해서 소로 만든 다음, 약과 반죽을 밤톨 크기로 떼어 소를 넣고 만두 모양으로 만드는 것으로 튀기는 방법은 같다.

강정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좋은 찹쌀 5말을 깨끗하게 쓿어서 하룻밤 물에 담가 건져 내어 곱게 가루로 만들어 그릇에 담는다. 멥쌀 5홉을 물에 하룻밤 담갔다가 건져서 곱게 가루로 만들어 분가루로 쓴다. 분가루는 붙지 않게 밀판에 뿌리는 가루이다. 찹쌀가루에 끓는 물을 붓고 수저로 고루 섞고는 엿과 초를 각각 3사발 넣어서 고루 합한다. 숟가락으로 반죽을 떠서 드리워 보아 흘러내리지 않을 만큼 반죽한다. 만약 반죽이 되면 끓는 물을 더 붓는다. 3개의 증편틀에 베보자기를 깔고 반죽을 나누어 붓는다. 커다란 시루에 증편틀을 3층으로 앉혀서 짚방석을 덮고 센 불로 오랫동안 충분히 찐다. 도중에 시루 안의 증편틀을 2~3번 바꾸어 준다. 충분히 뜸을 들여서 함지박에 쏟아 주걱으로 꽈리가 일도록 저어 준다. 이것을 분가루를 넓게 편 안반에 쏟아 넓게 편다. 분가루를 뿌리면서 홍두깨로 도독하게 밀어서 기름종이[油紙] 위에 벌려 놓는다. 뜨거운 김이 나가면 길이 2㎝, 넓이 4㎜ 정도 되게 썰어서 겉에 묻은 가루를 어레미에 쳐 내어 털어 버린다. 뜨거운 방바닥에 종이를 깔고 앞서의 것을 서로 겹치지 않게 벌려서 펴 놓아 말린다. 도중에 자주 뒤집는다. 몸이 완전히 마르면 걷는다(강정감). 놋쇠냄비인 통노구에 기름을 부어 끓인다. 끓으면 강정감을 한 움큼 넣고 약한 불에서 고루 젓는다. 강정감이 부풀기 시작하면 불을 세게 하여 급히 젓는다. 완전히 부풀면 불을 끄고 바구니에 국자로 퍼 담아 기름을 뺀다. 냄비에 꿀을 담고 물을 약간 섞은 후 불에 올려놓아 물과 꿀이 완전히 섞이도록 녹인다(집청꿀). 기름을 뺀 강정에 집청꿀을 발라 여러 가지 옷, 즉 고물을 입힌다. 참깨 고물은 참깨를 반나절쯤 물에 담갔다가 소쿠리에 건져 절구에 담아 살살 찧어 껍질을 벗기고 깨끗이 씻어서 체에 건져 하룻밤을 지낸다. 팬을 약한 불에 올려놓고 깨를 담아 주걱으로 저어 주면서 타지 않게 볶아 내어 까불어서 사용한다. 그밖에 청태(푸른 콩)·신감초가루·건강가루·잣가루·송홧가루·흑임자 등을 고물로 사용한다. 홍색강정은 쌀 튀긴 것을 가루로 만들어 지초기름에 담가 물을 들여 쓴다.

연원 및 용도

한대(漢代)의 음식 중에 거여(粔籹)가 있다. 공자(孔子)는 거여를 포함하는 소·양·돼지·닭·포·술로 제사를 지냈고, 한에서는 거여로 공자께 제사를 올렸다. 거(粔)는 ‘약과 거’, ‘중박계 거’이고, 여(籹)는 ‘약과 여’, ‘중박계 여’로 찹쌀가루를 물과 꿀로 반죽하여 8치 정도의 길이로 만들어 비틀어서 기름에 튀긴 것이다. 소위 유밀과의 전신이다.

그런데 거여를 비롯한 유밀과류로 보이는 것들이 530~550년에 중국 산동성(山東省) 고평현(高平縣)의 태수였던 가사협(賈思勰)이 지은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나온다. 고환(膏環, 거여)은 찹쌀가루를 물과 꿀로 단단하게 반죽하여 손으로 주물러 8치 정도의 길이로 길게 늘인다. 양 끝을 비틀어 기름에 지져 익힌다. 세환병(細環餠)은 밀가루를 물 탄 꿀로 반죽한다. 혹시 꿀이 없으면 대추 삶은 즙을 사용한다. 이것을 기름에 지져 익힌다. 혹은 소나 양의 기름을 넣어 반죽하는데 소나 양의 젖을 넣고 반죽하면 병의 맛이 좋고 연하다. 절병(截餠) 또는 갈자(蝎子)는 밀가루에 우유만 넣고 반죽한다. 입에 넣으면 부서지고 연한 맛이 마치 눈 녹는 듯하다. 이것을 기름에 지져 익힌다. 부유(餢俞)는 밀가루를 물 탄 꿀로 반죽한다. 물이 들어 있는 쟁반에 반죽을 담고 옻칠한 뚜껑으로 덮어 10일 이상 놓아두면 반죽이 마른다. 마른 반죽을 그릇에 담아 손으로 주물러서 모양을 만든다. 이것을 끓는 기름에 넣어 익힌다. 떠오르면 재빨리 뒤집고 젓가락으로 반듯하게 모양을 잡는다. 익으면 꺼내는데 한쪽 면은 희고 다른 한쪽 면은 색깔이 붉다. 연해서 좋고 오래 두어도 딱딱해지지 않는다. 부드러우며 맛이 좋다. 항아리에 담아 항아리 주둥이를 물 축인 베보자기로 덮어 두면 항상 윤기가 있고 매우 좋다. 당대(唐代)가 되자 조리용 도구로 철냄비가 등장하고 일반 서민들에게도 보급되면서 튀김음식이 발달하였다. 『제민요술』에 나오는 유밀과를 포함하여 많은 종류의 당과자(唐菓子)도 나왔다. 주 재료는 밀가루로서 거의 대부분이 튀긴 것이다.

당과자류는 통일신라시대에 유입되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팔관회와 연등회 때 유밀과가 사치스러운 식품이라는 이유로 재정이 어려워지면 금하기도 하고, 재정 형편이 좋아지면 회복하기도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여서 1418년(세종 1)에 세종은 유밀과 쓰는 것을 금하게 하였다[『세종실록』 원년 12월 17일 8번째기사].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는 유밀과를 소선(素膳)의 대표적인 찬품으로 여겼으며 격(格)이 높은 연회에는 반드시 올렸다. 고려의 궁중 풍속을 속례(俗禮)로서 받아들인 조선은 명나라나 청나라 사신을 맞이할 때의 환영연인 하마연(下馬宴)과 환송연인 상마연(上馬宴), 왕과 왕세자 가례(嘉禮) 때의 동뢰연(同牢宴), 대왕대비나 왕·왕비의 생일잔치연인 진찬(進饌)진연(進宴) 그리고 능침(陵寢) 제례 등에서 다양한 유밀과를 만들어 음식상에 올렸다.

고려의 제례를 속례(俗禮)로서 받아들인 조선은 여러 능침 제례, 영희전(永禧殿) 제례, 영소묘(永昭廟) 제례, 문희묘(文禧廟) 제례, 칠궁(七宮) 제례, 현륭원(顯隆園) 제례, 각원(各園) 제례 등에서 중박계(中朴桂), 백산자(白散子), 홍산자(紅散子), 약과 등의 유밀과를 제물로 올렸다. 조선의 이러한 제례법을 일반 서민들도 받아들여 현재에도 지켜지고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규합총서(閨閤叢書)』
  • 『제민요술(齊民要術)』
  • 『진연의궤(進宴儀軌)』
  • 『진찬의궤(進饌儀軌)』
  • 『태상지(太常誌)』
  • 『예기(禮記)』
  • 김상보, 『음양오행사상으로 본 조선왕조의 제사음식문화』, 수학사 1996.
  • 김상보,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수학사, 1995.
  • 김상보, 『한국의 음식생활 문화사』, 광문각,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