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原)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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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원 |
한글표제 | 원 |
한자표제 | 原 |
상위어 | 문체(文體) |
관련어 | 논변(論辨), 논(論), 설(說), 변(辨), 해(解), 난(難), 석(釋), 유(喩), 대문(對問) |
분야 | 문화/인문학/어문학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박동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원(原)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6년 3월 21일, 『세조실록』 12년 10월 11일 |
제시된 문제를 본질과 근원으로 소급하여 논란하는 사변적인 한문 문체.
개설
원(原)은 당나라 때 한유(韓愈)가 「원도(原道)」·「원성(原性)」·「원훼(原毁)」·「원인(原人)」·「원귀(原鬼)」의 오원(五原)을 지은 이후 한문 문장의 한 갈래로 성립하였다. 한유의 오원은 당나라 말 격변기에 새 지배 이념과 가치를 선양할 목적으로 지은 철학 논문들이다. 이러한 태생적인 특성 때문에 ‘원’은 대체로 성리학 이론과 정치 원론을 다룬 것이 가장 많고, 문학과 인정(人情)에 관련된 것이 그 다음으로 많다. 명말 청초의 학자 황종희는 「원군(原君)」을 통해, 중국 사회의 오랜 전제 정치를 비판하며 위정자의 각성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원’은 입론의 근거를 경전(經傳)과 제가서(諸家書)에서 찾고, 민정(民政)과 실용(實用)에 유의한다는 측면에서는 다른 논변체 산문과 다르지 않다. 다만, 입론 과정에서 근본을 추적하는 ‘추본소원(推本所原)’ 절차를 거쳐 작자가 내세우는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한다는 점이 다른 산문과 다르다. 이 ‘원’체 산문은 당대 사상의 주도적인 흐름, 논쟁적 현안, 여러 철학 담론의 초기 형태를 담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만하다.
내용 및 특징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 도입된 고려시대 말기에서 조선시대 초기에 한유의 산문을 열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부터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사간원이나 대신들의 상소문 중에는, 한유의 「원도」를 불교를 억제할 명분과 논리로 삼은 것이 많았다(『세종실록』 6년 3월 21일). 또 세조는 문신들을 불러 「원도」를 강(講)하게 하기도 하였다(『세조실록』 12년 10월 11일). 이처럼 한유의 글은 그의 「논불골표(論佛骨表)」와 더불어, 올바른 유학의 정치를 제창하며 불교를 억제하기 위한 논리와 명분이 필요할 때마다 왕실 및 조정 대신들 사이에서 거론되었다.
문헌 기록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체 산문은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는 이곡의 「원수한(原水旱)」과 이첨의 「원수(原水)」 등이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서경덕이 지은 「원이기(原理氣)」는 이황과 이이가 이기(理氣)에 관해 본격적으로 논쟁을 벌이기 전에, 최초로 이기를 학문적 대상으로 거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7세기의 신최는 「원속(原俗)」 등 11편의 작품을 남겼다. 정격 고문으로 작성된 체계 있는 연작 형식의 원체 산문으로는 최초의 작품으로, 그는 이 글에서 예악 위주의 구체적인 담론을 펼쳐 당대의 문란한 풍속과 도덕적 해이를 교정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글에는 젊은 지식인이자 학자로서의 시대 고민을 담은 정책 대안이 잘 나타나 있다.
18세기에는 조귀명이 「원불(原佛)」을 통해 구체적인 불교 이론을 바탕으로 불교 배척 논의를 펼쳤다. 또 윤형로는 3편으로 이루어진 「원성편(原性篇)」에서, 그 당시 논란이 되고 있던 성리학의 심성(心性) 이론을 주자(朱子)의 이론에 따라 반박하고 비판하였다. 이 작품들은 당대의 주류 사상과 이념을 검증하고 재인식하는 차원에서 창작되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정범조는 「원정(原政)」 등 8편의 작품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적 정치사상을 표출하였다. 정약용은 「원목(原牧)」을 비롯한 7편의 작품에서 그의 혁신적인 정책 담론을 펼쳤다.
홍석주의 「원명(原名)」 2편 등 5편의 원체 산문은 정격 고문체로 된 연작 형식의 작품이다. 연쇄적인 질의와 응답, 정밀한 통박을 거치는 치밀한 입론 과정이 관심을 끄는 글이다. 3편으로 이루어진 「원시(原詩)」는 이전과 다른 문예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혹자(或者)와 힐문(詰問)하는 방식을 통해 반례와 반박의 과정을 거치는 선명한 논리 전개 방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격 고문체를 벗어난 소품 형식의 원체 산문은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창작되었다. 이덕무의 「원한(原閑)」, 심노숭의 「누원(淚原)」 등이 그 예이며, 개화기 변영만의 「원중(原中)」, 「원사(原死)」에서도 이 경향이 이어졌다. 논변 산문이 지향하는 객관(客觀)과 이지(理智), 소품 산문이 지향하는 주관(主觀)과 서정(抒情)은 소품체 원체 산문에 잘 융합되어 남다른 미감을 전해 준다.
참고문헌
- 서복관 지음, 윤호진 옮김, 『한문문체론 연구』, 태학사, 2000.
- 진필상 지음, 심경호 옮김, 『한문문체론』, 이회, 2001.
- 박동주, 「조선후기 원체산문의 특성과 작품양상」,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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