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언(寓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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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내용의 이야기를 빌려 특정한 정치적 상황을 돌려 말하는 문체 또는 그러한 이야기 작품.

개설

역사서는 사실 기사를 위주로 편찬되지만, 때로는 사실의 이면까지 전달하기 위해 문학적 수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언(寓言)도 그중 하나이다. 복잡하게 얽힌 정치적 사실을 분명한 구조로 제시하기 위해 비유적인 성격의 이야기인 우언을 역사서 속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러한 우언 작품은 역사서 편찬자가 대상 사료로서 수집해 끼워 넣은 것과,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비평으로서 포함시킨 이야기로 나뉜다. 전자가 독립된 우언 작품을 사료로 활용한 경우라면, 후자는 사평(史評)의 일부로서 역사가가 창작해 삽입한 것이다.

내용 및 변천

역사서에 포함된 우언 작품의 선례는 『삼국사기』의 「귀토지설(龜兎之說)」과 「화왕계(花王戒)」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전자는 삼국의 통일 외교전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 및 김유신과 김춘추의 역할을 우의하고 있고, 후자는 통일신라 초기인 신문왕(神文王) 시대의 유학 사상가인 설총(薛聰)의 정치적 위치와 구실을 우의하고 있다.

『고려사』에는 「악지(樂誌)」에 이제현(李齊賢)의 「장암곡(長巖曲)」이 실려 있고, 「간신열전」에 유청신(柳淸臣)과 관련된 「묘부곡참언(猫部曲讖言)」이 수록되어 있다. 이 두 작품은 각각 지식인의 처세를 그물에 걸린 참새에, 간신과 적신을 나라를 망치는 고양이에 빗대었다.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사평 부분에서 3편의 우언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는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들 수 있다. 1498년(연산군 4)에 무오사화(戊午士禍)의 서막을 알리는 연산군의 전지(傳旨)가 내려졌다. 연산군은 여기에서 김종직의 내력, 「조의제문」의 내용, 작품 구절의 우의를 차례로 열거하였다. 그런 다음에 작가인 김종직과 그것을 사초(史草)로 수록한 제자 김일손(金馹孫)의 의도를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항우와 초의제(楚義帝)의 정치적 알력을 묘사한 내용이 세조와 노산군 즉 단종의 대결 구도를 빗댄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연산군일기』 4년 7월 17일).

다음으로는 1534년(중종 29)에 송인수(宋麟壽)를 유배했다는 기사의 사평에 포함된 「묘수좌(猫首座)」를 꼽을 수 있다. 이 기사에는 "송인수를 경상도 사천에 유배시켰다."는 짤막한 내용 아래에 "사신은 논한다[史臣曰]"로 시작되는 긴 평이 붙어 있는데, 여기에 이 작품이 포함된 것이다(『중종실록』 29년 7월 22일).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기묘사림(己卯士林)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던 송인수가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술책에 넘어갔다가 뒤늦게 깨닫고 그를 탄핵했지만, 오히려 역공을 당해 연이어 좌천과 유배를 당해야 했던 정치적 상황을 형상화하여 보여 준다. 여기서 송인수는 어리석은 쥐 무리의 왕에, 김안로는 늙어서 힘이 없지만 술책으로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에 비유되었다. 이 이야기의 근간은 인도의 고대 설화집 『판차탄트라(Pancatantra)』의 셋째 권 「까마귀와 올빼미」에서 유래했는데, 이 이야기는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어 각 민족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여러 이본(異本)을 낳았다. 「묘수좌」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마지막으로는 윤선도(尹善道)의 「쾌산원우(快山寃牛)」를 들 수 있다. 1663년 『현종실록』 기사에는 "양사(兩司)가 홍우원(洪宇遠)을 삭탈관직하여 축출하라는 논의를 멈추었다."(『현종실록』 4년 7월 29일)는 짤막한 내용 아래에 장편의 논평이 덧붙어 있는데, 이 작품은 마지막 총평에 포함되어 있다. 농사꾼 주인이 쾌산(快山)이라는 곳에서 밭을 갈다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곁에 있던 소가 호랑이를 물리치느라 밭을 엉망으로 만들었는데, 깨어난 주인이 화를 내며 소를 죽여 버렸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효종이 승하한 뒤 제기된 기해예송(己亥禮訟)의 초기 상황이 전제되어 있다. 애초에 홍우원은 윤선도를 유배시키는 것이 부당한 일임을 밝히고 송시열 당파의 과격한 행위를 지적하여 왕에게서 긍정적인 비답을 얻어 냈다. 그 때문에 양사가 거세게 반발하며 홍우원의 삭직을 계속 청했으나, 왕이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양사가 그 건에 대한 논의를 멈추니, 예송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고비를 넘기게 된 것이다. 훗날 『현종실록』을 편찬할 때 실록청의 실무 책임자인 도청(都廳) 당상(堂上)으로 참여했던 홍우원은 기사 아래에 삼년설 주장의 논리를 요약적으로 정리해 부기하고, 윤선도 유배의 부당성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쾌산원우」까지 동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이 포함된 ‘총평’은 윤선도의 문집에 수록된 「서회(敍懷)」를 간추린 것이다. 억울한 소를 윤선도에, 호랑이를 송시열·송준길에, 그리고 노인을 왕에 빗대는 구도를 지니고 있다. 혹은 억울한 소를 홍우원에, 호랑이를 언관들에, 노인을 나라에 빗대는 구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역사서에 실린 우언은 서사를 통해 사실과 이면의 관계를 밝히고, 역사와 문학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점검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우언의 개념을 좀 더 유연하게 설정한다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대 역사서에서 더 많은 자료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고려사(高麗史)』 「악지(樂誌)」
  • 윤주필 주편, 『한국우언산문선』vol.1, 박이정, 2009.
  • 윤주필, 「우언과 정치-정치담론으로서의 한국 우언문학」, 『고소설연구』제29집, 한국고소설학회, 2010.
  • 한양명, 「지배이데올로기의 실천을 위한 가축의 도구화와 의우·의구 전설」, 『구비문학연구』제8집, 구비문학회, 1999.
  • 황패강, 「그물」, 『한국문화상징사전』vol.2, 두산동아, 2006.
  • 황형주, 「『삼국사기·열전』 찬술과정의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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