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작(龍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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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제사 의례에 사용된 제기(祭器) 중 하나로 술이나 물을 뜰 때 사용하는 국자.

개설

용작은 길례 제사 의례에서 잔을 올리는 작헌(酌獻)을 할 때와 술을 뜨거나 손 씻는 관세(盥洗)할 때에 물을 뜨는 제기이다. 그러다가 조선후기에는 헌작할 때에만 주로 용작을 사용하였다. 1758년(영조 34)에 편찬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에 술을 뜨는 것이라고만 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세종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오례』에 처음으로 도설(圖說)이 확인된다. 이후 성종대의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1788년(정조 12)에 편찬한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과 『춘관통고(春官通考)』, 대한제국 시기의 『대한예전(大韓禮典)』 등 역대 전례서 및 의궤에 ‘용작’의 도설이 수록되어 있다.

형태

용작은 손잡이에 용 모양이 주조되어 있는 국자이다. 중국 남송대 주희(朱熹)가 지은 『소희주현석전의도(紹熙州縣釋奠儀圖)』의 기록에 의하면, 용작의 무게는 1근(600g)이고, 음식을 퍼 올리는 작구(勺口)의 직경 너비는 2치 1푼(약 6㎝), 길이는 2치 8푼(약 8.5㎝), 깊이는 1치 1푼(약 3㎝)이고, 자루의 길이는 1자 2치 9푼(약 39㎝)이라고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것을 참조하여 용작을 제작하였다. 그에 따라 『국조상례보편』에는 작의 무게는 1근인데 의궤에는 1근 4냥(약 637g)으로 되어 있으며, 입구의 길이는 2치 8푼, 너비는 2치 1푼, 깊이는 1치 1푼, 자루의 길이는 1자 2치 9푼이며, 자루의 끝에 용머리 장식[龍頭]를 설치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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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민속 관련 사항

목조(穆祖)의 왕비인 효공왕후(孝恭王后)가 묻힌 안릉(安陵)에서 한식제(寒食祭) 및 고유(告由)・위안(慰安)・이안(移安)・환안제(還安祭) 등 여러 제사를 지낼 때,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에서 기일에 지내는 제사인 기신제(忌晨祭)를 지낼 때, 명종의 원자(元子) 묘인 순회묘(順懷墓)에서 한식제를 지낼 때에 용작을 진설하고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종묘의궤(宗廟儀軌)』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
  • 『춘관통고(春官通考)』
  • 『대한예전(大韓禮典)』
  • 『소희주현석전의도(紹熙州縣釋奠儀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