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안(龍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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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안나무 또는 용안나무의 열매.

개설

무환자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높이는 10~13m이며, 늦봄에서 초여름에 황백색의 꽃이 피고, 7~8월에 단맛이 나는 열매가 익는다. 말린 용안을 용안육(龍眼肉)이라 하고 식용하며 약재로 쓰인다.

원산지 및 유통

원산지는 중국 남방으로 인도, 대만, 류큐 등 동남아시아와 열대 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한다. 7~8월에 열리는 열매는 지름 2∼3㎝의 공모양으로 황갈색인데 겉에 강모(剛毛)가 많고, 과육은 흰색으로 반투명하고 즙이 많고 단맛이 강하고, 마르면 검은 갈색이 된다. 용안은 원안(圓眼)·용목(龍目)·원안(圓眼)·익지(益智)라고도 하고, 열매는 계원(桂圓)·여지노(荔枝奴)라 하고, 말린 것은 용안육·복육(福肉)이라 한다. 한방에서 심비(心脾)를 보하는 강장제와 진정제의 약재로 쓰인다.

연원 및 용도

중국 황실에서 보내오거나 무역품이므로 왕족이나 고위 관리들이나 맛볼 수 있고 약재로 쓰였다. 궁중의 연회에 나오는 생실과의 종류는 40여 가지인데, 연회상을 차릴 때 고임 과물 중에 말린 용안과 여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1827년(순조 27) 이후에는 연회 중 가장 큰 상차림인 정일진찬에 올리는 진어찬안에 올렸다. 용안과 여지를 고임에 쓸 때의 분량은 3근 8량에서 40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용안의 기록이 약 20건 나오는데, 대개는 중국 사신이 선물로 가져온 목록에 들어 있었다. 1411년(태종 11) 태종이 태평관에서 사신에게 잔치를 베풀었을 때 두목 한 사람이 용안·여지와 다른 물품들을 바쳤고(『태종실록』 11년 8월 16일), 1419년(세종 1)에는 중국 황제가 양(羊)과 서적과 꿀[蜜]에 담근 용안과 여지를 각 2항아리씩 보내왔다(『세종실록』 1년 12월 18일). 1425년(세종 7)에는 왕에게 비단과 사탕·용안·여지 등을 올렸고(『세종실록』 7년 2월 13일), 윤봉(尹鳳)이 용안과 여지를 각 1쟁반씩 바쳤으며(『세종실록』 10년 7월 24일), 1456년(세조 2) 두목 윤복(尹福)이 용안과 여지를 각 1소반씩 올렸다(『세조실록』 2년 5월 18일).

중국에서 받은 용안을 왕족이나 왜구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1431년(세종 13) 일본좌무위에게 본국의 소산이 아닌 금란(金欄)·용안·여지·앵가(鸚哥) 등을 주었고(『세종실록』 13년 5월 20일), 1452년(단종 즉위) 노산군에게 비단과 용안 1합, 여지 1합, 백사당(白沙糖) 1통 등을 바쳤다[『단종실록』 즉위 10월 13일 1번째기사].

생활민속 관련사항

용안을 옛날 사람이 본 적은 없겠지만, 용의 눈처럼 생겼다고 하여 용안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약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고, 중국에서 왕실에 선물로 보내는 귀한 과일이므로 일반 서민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용안다식(龍眼茶食)은 용안육을 절구에 찧어서 체에 걸러 꿀을 넣고 반죽하여 아주 작은 다식판에 박아 낸 것이다.

참고문헌

  • 윤서석, 『한국의 음식용어』, 민음사, 1991.
  • 황혜성 외, 『이조궁정요리통고』, 학총사, 1957.
  • 황혜성 외, 「궁중의 식생활」, 『한국음식대관』6권,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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