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추보(五星推步)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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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오성추보 |
한글표제 | 오성추보 |
한자표제 | 五星推步 |
분야 | 문화/과학/천문 |
유형 | 개념용어 |
집필자 | 김일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오성추보(五星推步)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9년 11월 26일, 『영조실록』 5년 5월 20일, 『순조실록』 11년 9월 23일 |
오행성의 공전주기와 회합주기 등을 역산(曆算)하는 것을 일컬음.
개설
오성의 추보술에는 공전주기와 회합주기의 두 가지 요소를 측산하는 일이 중요한데, 고려시대에 사용된 『선명력(宣明曆)』의 경우 회합주기를 중시하였다. 회합주기는 지구와 각 행성이 태양으로부터 일직선상으로 만나는 것으로, 행성의 겉보기 위치가 원래 자리로 복귀하는 주기를 이른다. 이를 우선시하였다는 것은 고대 관측학에서 이 회합주기를 통해 각 행성의 운동 특성을 파악하려 하였음을 시사한다.
내용 및 특징
오성의 회합주기를 역산하는 응수(應數)로 『신당서』에서는 『선명력』의 경우 주율(周率)과 주책(周策)으로 말하고 있다. 주율은 회합주기를 분값으로 이른 것이고, 주책은 그 주율을 날수로 말한 값이다. 목성의 주율은 335만 540분 83초로, 주책은 398일 7340분 83초 곧 398.8739일로 기록하였는데, 현대값에 매우 근사하다. 화성의 주책일은 779일 7795분 26초 곧 779.9280일, 토성 주책일은 378일 679분 79초 곧 779.9280일, 금성 주책일은 583일 7645분 85초 곧 583.9111일, 수성 주책일은 115일 7390분 25초 곧 115.8798일이다.
내행성인 금성과 수성의 경우 달처럼 위상 변화를 하고, 초저녁과 새벽녘에 일정 시간 관측되므로 이를 석현(夕見)과 신현(晨見)으로 구분하였고, 행성이 태양에 근접하여 보이지 않는 상태를 복(伏)으로, 태양에서 멀어져 점차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현(見)이라 하였다. 금성의 석현복일(夕見伏日)은 256일, 신현복일(晨見伏日)은 327일 7645분 85초로, 수성의 석현복일은 52일, 신현복일은 63일 7390분 25초로 수록하고 있다.
『고려사』「역지」에 수록된 수시력의 오성추보술에서는 역율(曆率)과 도율(度率)을 설정하였는데, 역율은 행성이 항성에 대한 공전주기의 분값을 이르고, 도율은 행성이 항성에 대하여 천구상을 1도 이동하는 데 걸리는 평균시간을 이른다. 이것은 공전주기를 직접 수록한다는 의미이다. 도율은 역율을 역도로 나눈 값이다. 목성의 도율이 11,8582분인데 이를 1만으로 나누면 그대로 11.8582년으로 환산되며, 화성의 도율 1,8807분 50초는 1.88075년에 대응되고, 토성의 도율 29,4255분은 29.4255년이 된다.
오성추보에 관한 기록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면, 정인지(鄭麟趾)가 죽자 그의 졸기(卒記)가 수록되었는데, 세종이 정인지에게 역대 역법의 다르고 같은 점, 일월식 추산, 오성과 사암성(四暗星)의 추보, 전도(躔度)의 유역(留逆) 관계를 편찬토록 명한 일을 기록하고 있다(『성종실록』 9년 11월 26일).
관상감에서 오성을 포함한 칠정(七政)의 추보법이 매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측량에 관한 제반 기구가 없어서 일체 청나라에서 개정(改正)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1728년 절행사(節行使)를 통해 시헌력(時憲曆)의 용법과 방서(方書)를 구해 왔으나 주야로 해석해도 그 법이 매우 어렵고, 특히 칠정의 위도(緯度)와 화성의 경도(經度)를 추보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손댈 수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에 관상감의 관원 1명을 보내어 빠진 책을 구해서 그 용법을 익힌 연후에야 칠정을 다 추보할 수 있겠다고 간언하였다(『영조실록』 5년 5월 20일).
관상감에서 오성추보법을 설명하면서 세차(歲差)의 반영 문제를 논하고 있는데, 매년 항성이 동쪽으로 51초 이동하는 것을 세차라 하고 이 값이 쌓여 1도에 차면 숙차(宿次)에서 감하여 천도(天度)에 부합토록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관(曆官)들이 구법에만 의거하고 변통하는 데 매우 어두우므로, 금번 동절사(冬節使) 편에 관상감 관원을 청나라에 보내 흠천감에 질문토록 하고, 겸해서 신법(新法)과 방서를 얻어 오도록 하는 것이 일월과 오성의 칠정 추보에 중요한 일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조선후기 관상감은 시헌력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매년의 실제적인 역산에는 직접 추보함이 어려워 청나라의 흠천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순조실록』 11년 9월 23일).
참고문헌
- 김일권,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즈윈, 2008.
- 김일권, 『국역고려사』, 동아대학교 石堂學術院, 경인문화사, 2011.
- 陳美東, 『中國科學技術史』 , 天文學券, 科學出版社, 2003.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上中下, 上海人民出版社,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