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휘원(永徽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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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嚴氏) 의 묘.

개설

순헌귀비는 1859년(철종 10)에 궁궐에 들어와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시위 상궁이 되었다가, 1885년(고종 22)에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겪은 뒤, 이듬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을 하는 데 일조하였다. 한일 강제 병합 다음 해인 1911년에 세상을 떠나 청량리에 위치한 영휘원에 안장되었다.

조성 경위

순헌귀비의 장례 절차는 일제의 감시하에 이루어졌다. 백작 이완용(李完用)과 자작 이재곤(李載崐) 등이 제향 절차를 정하고 그에 따라 시행하게 하였다. 그 결과 영휘원에 난간석을 배설하지 않고, 영휘원에 올리는 명절 다례(茶禮) 또한 오직 청명제(淸明祭)만 행하게 되는 등 능원 조성과 의례의 규모가 모두 줄어들었다(『순종실록부록』 4년 8월 14일).

조성 상황

영휘원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까닭에 상당히 간소하게 조성되었다. 난간석 없이 봉분만 조성하였고, 양석과 호석이 양쪽에 1쌍씩 배치하였다. 석물과 정자각 등은 정조의 후궁 수빈박씨(綏嬪朴氏)의 묘인 휘경원(徽慶園)의 예에 따라 배설하였다. 병풍석 없이 반구형의 봉분으로 능침이 구성되었다. 봉분 주위로 부채형의 곡장(曲墻)이 둘러져 있다. 1917년에는 영휘원의 홍살문을 개건하였다.

관련 사항

1921년에 영친왕의 맏아들 진(晉)이 태어났으나,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이에 영휘원의 좌좌갑원(左坐甲原)에 장사 지내고, 원호를 숭인원(崇仁園)이라 하였다(『순종실록부록』 15년 5월 17일).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