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문(永肅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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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에 있는 문.

개설

궁장이란 궁궐의 담장을 이르는 말이다. 수많은 용도의 주요 전각이 각각의 영역별로 행각 또는 담으로 둘러싸여 장소가 한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궁궐을 수호하기 위한 궁장도 여러 겹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궁궐의 담장은 복잡하게 얽혀 방향성에 따라 뻗어 나가거나 다른 영역과 구분하기 위해 담장의 중간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지처럼 불거져 나가기도 한다. 영숙문(永肅門)은 창덕궁의 내전과 후원을 가르며 창경궁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궁장의 중간에서 북쪽으로 다시 뻗어 나가 후원을 두른 담장의 사이에 있는 문이다.

위치 및 용도

창덕궁의 후원은 부용지를 중심으로 주합루·규장각이 펼쳐져 있어 담장이 이 권역을 둘렀다. 서쪽으로 경사가 높은 언덕을 넘어가면 남쪽에는 ‘ㄱ’ 자 형태의 2층으로 조성된 개유와와 열고관이 있고, 다시 서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서고(西庫)와 수직간이 조성되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담장이 이 영역을 둘렀으며, 그 너머 서북쪽에 궁궐의 후원을 지키는 국별장직소·국출신번소·국출신직소와 같은 부서들이 배치되었다. 영숙문은 바로 이 권역을 두른 담장의 사이에 설치되어 출입하는 문이었다.

변천 및 현황

영숙문이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정원이 궁궐의 후원에 ‘담연문(淡烟門)’이라 하는 문이 있는데 궁궐 문에 담연이라는 이름은 걸맞지 않으니 다른 이름을 액호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었다. 담연을 말 그대로 풀이하면 깨끗한 연기쯤이 되는데 아마도 연기라는 말이 거슬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더구나 담연문이라는 이름은 연산군 때에 만들어진 이름이었기 때문에 더욱이 그 이름을 바꾸려 주장했던 것 같다. 승정원(承政院)에서 세 가지 이름을 올려 선택을 기다리니 중종은 ‘영숙문’이라는 이름을 낙점하였고, 이때부터 영숙문이 되었다(『중종실록』 23년 4월 10일). 이후 1900년대 초까지 존재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사라지고 지금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

형태

영숙문은 궁장 사이에 있는 솟을문이었다. 다른 문과 달리 2칸 규모의 문으로 설치되었는데 여타의 문에 비해 위상이 높은 문이었다. 문짝은 각각 주칠을 한 2짝의 판장을 달았는데, 2칸 중 남쪽 칸의 문은 협문이고 북쪽 칸의 문이 주된 출입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붕은 맞배지붕을 이었고 주된 문의 용마루 끝에 용두를 올려 문의 위계를 달리해 놓았다. 문의 형태는 사주문(四柱門)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궁궐지(宮闕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