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조(烟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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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내지봉수(內地烽燧)에서 봉화를 피우기 위해 방호벽(防護壁) 내부에 설치한 아궁이.

개설

연조는 주로 내지봉수에서 거화를 위해 방호벽 내부에 마련해 둔 시설물을 가리킨다. 연굴(烟窟), 봉조(烽竈), 아궁이로 불리기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조선왕조실록』에서 연조에 관한 기록은, 1447년(세종 29)에 의정부에서 병조의 정장(呈狀)에 의거해 건의한 내용을 통해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때 의정부의 주청(奏請)을 받아들여 복리봉화(腹裏烽火), 즉 내지봉수의 축조 규칙과 형태를 정하였다. 연조는 산봉우리 위에 땅을 고르고 쌓아 올리되, 위는 뾰족하게 하고 밑은 넓게 하며, 높이는 10척이 넘지 않도록 하였다. 또 흉악한 짐승을 막기 위해 연조 주위에는 원장(垣墻)을 둘러쌓게 하였다(『세종실록』 29년 3월 4일).

내지봉수에 설치된 연조의 하부 구조 또는 형태는 지표 및 발굴 조사를 통해 일부 확인되었다. 그러나 상부가 온전한 사례는 김천 성황산봉수(城隍山烽燧)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남아 있는 연조의 기저부와 문헌 기록을 참고하면 높이는 대략 3m 이내로 추정할 수 있다. 내지봉수에서 연조가 확인된 사례는 <표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20기 정도이다. <표1>은 원형을 파악할 수 있는 주요 봉수의 연조 사진이다.

연조의 수는 1419년(세종 1)에 적변의 상황에 따라 거화의 수를 달리하는 오거화제(五擧火制)가 확립된 까닭에 대부분 5기이다. 돌을 쌓아 올리거나 흙과 돌을 섞어 만들었는데, 그중 토·석 혼축(混築)인 경우는 봉수의 내구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이 외에 조선후기 수원의 화성봉돈(華城烽墩)은 유일하게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형태는 원형과 외방내원형으로 구분되며, 연조의 배치는 방호벽 내부에 연조 5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드물기는 하지만 연조를 방호벽 외부에 시설하거나, 연조 1기는 방호벽 외부에 시설하고 나머지는 내부에 설치한 사례도 있다.

배치 형태를 살펴보면, 방호벽 내부에 연조 5기를 동-서 혹은 동남-서북 방향으로 1열로 배치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이는 봉수가 들어선 곳의 지형이 동-서로 평평하고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경우 연조는 신호를 보내는 방향에 치중하여 배치되었다. 그러나 산청 입암산봉수(笠巖山烽燧)처럼 연조 3기가 ‘V’ 자 형태로, 충주 주정산봉수(周井山烽燧)처럼 5기가 전후 2열의 ‘W’ 자 형태로, 혹은 진주 광제산봉수(廣濟山烽燧)와 같이 5기가 동-서 2열의 ‘M’ 자 형태로 배치된 사례도 있다. 이는 봉수가 축조된 곳의 지형적인 특징에 따라 내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연조의 간격을 좁게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조의 지름 곧 직경은 0.8m에서 5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조사를 통해 파악한 내지봉수 16기의 연조 평균 직경은 1.9m이다. 연조의 중심 간 간격 또한 1m에서 최대 8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현재까지 조사된 봉수 13기의 연조 중심 간 평균 간격은 3.5m이다. 그런데 5기의 연조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성남 천림산봉수(天臨山烽燧)와 김천 성황산봉수의 예를 통해 보면, 연조의 중심 간격은 평균 4m~5m가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1거 즉 1기에서 봉화를 피우는 평상시에는 연조의 간격이 좁아도 상관이 없지만, 여러 개의 봉화를 올려 상황을 전달하는 비상시에는 차이가 있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만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봉수인 대응봉수와 거화의 수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조의 간격을 좁게 배치한 경우가 적지 않은 까닭은 봉수의 축조가 대응하는 봉수와의 거리, 지형, 입지 여건 등에 따라 결정되어 충분한 면적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연조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조선시대의 내지봉수는 신호를 받는 기능보다는 보내는 기능을 강조한 까닭에 주로 전달 방향에 해당하는 북쪽에 동-서 1열로 설치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평상시에 올리는 1기의 봉화 곧 1거는 중앙의 3연조, 중앙에 가까우면서도 비교적 규모가 작은 4연조, 또는 방호벽 가장자리의 연조에서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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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연조는 주로 내지봉수에서 본연의 기능인 거화를 위해 방호벽 내부에 둔 필수 시설이다. 다만 한반도 남부 지역인 경상도 남해안과 충청도 및 경기도 서해안에 위치한 일부 연변봉수에서도 연조가 확인되고 있다. 연변봉수의 연조는 연대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응봉수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반면 남해 대방산봉수(臺防山烽燧)처럼 연대 주위에 반구형으로, 혹은 남해 설흘산봉수(雪屹山烽燧)처럼 무질서하게 배치되어 있는 사례도 있다.

참고문헌

  • 경남발전연구원, 『宜寧 彌陀山 烽燧臺』, 경남발전연구원, 2007.
  • 경남발전연구원, 『晋州 廣濟山烽燧臺』, 경남발전연구원, 2006.
  • 김주홍, 『조선시대 봉수연구』, 서경문화사, 2011.
  • 김주홍, 『조선시대의 연변봉수』, 한국학술정보, 2010.
  • 우리문화재연구원, 『昌寧 餘通山烽燧臺 遺蹟』, 우리문화재연구원, 2007.
  •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성남 천림산봉수 발굴조사보고서』,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2001.
  • 김주홍, 「朝鮮時代의 內地烽燧」, 충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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