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봉수(內地烽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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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경 지역 해안가에 설치한 연변봉수(沿邊烽燧)와 한양의 경봉수(京烽燧)를 연결하기 위해 내륙에 설치한 봉수.

개설

내지봉수는 내륙 산간에 위치한 봉수를 말한다. 조선 세종대에는 복리봉화(腹裏烽火)라고도 불렀다. 내지봉수는 해안이나 변경 제일선에 설치되어 있던 연변봉수에 비해 안전한 지역에 있었으므로 봉수군(烽燧軍)이 번(番)을 서는 데 위험이 덜하였다. 그러나 봉수가 산간 고지대에 위치한 경우 대개 산세가 험하여, 봉수군이 번을 서기 위해 오르내리거나 상주하는 일은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는 고역이었다. 또한 내지봉수는 연변봉수와는 다른 입지로 인해 전체적인 규모와 형태가 달랐다.

내용 및 특징

복리봉화라고도 불리는 내지봉수는 지지(地誌)에 따라 육로봉화(陸路烽火) 또는 육로봉수(陸路烽燧)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평안도의 일부 봉수가 육로봉화로 표시되어 있으며,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도 평안도의 일부 봉수를 육로봉수로 표현하였다.

내지봉수의 축조와 시설에 관한 제도는 1447년(세종 29)에, 병조의 건의를 바탕으로 의정부에서 올린 ‘복리봉화배설에 대한 제도[腹裏烽火排設之制]’를 통해 규정되었다. 이때 연조(煙竈)의 형태와 규모를 정한 것은 물론이고, 흉악한 짐승을 피하기 위한 원장(垣墻) 등의 부속 시설을 마련하는 방안도 마련되었다(『세종실록』 29년 3월 4일). 1475년(성종 6)에는 왕이 병조에 전교를 내려, 봉수가 있는 곳에는 모두 연통(煙筒)을 만들게 하였다. 낮에는 반드시 연기로 상황을 알리는데, 바람이 불면 연기가 곧바로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또 연기가 바람에 흩어져 봉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때는 봉수군이 달려와서 고하도록 하였다(『성종실록』 6년 5월 27일). 이러한 기록을 통해, 1475년 이후에 모든 내지봉수는 원장(垣墻) 내 연조(烟竈) 상부에 연통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봉수 주변에는 봉수군의 생활이나 주거에 필요한 가옥과 창고[庫舍], 우물 등의 부속 시설이 있었다. 또한 봉수군의 출입이나 물자 운반을 위한 출입 시설을 한두 곳 마련하였다. 출입 시설은 대개 개구형(開口形)·계단형·경사형의 세 형태로 구분되는데, 방호벽의 둘레를 따라 평균 70m~80m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조선시대 내지봉수의 일반적인 형태는 다음의 표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표①]은 해방 이후인 1947년에 차상찬(車相瓚)의 유고(遺稿)를 모아 발행한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의 내용을 근거로 이철영(李喆永)이 작성한 내지봉수의 연조 추정도이다. 연조 상부에 연통 구실을 하는 밑이 없는 항아리를 올려놓아 연기가 잘 올라가도록 했음을 알 수 있다.

[표②·③·④]는 주요 내지봉수의 복원 추정도에 해당한다. 용인 석성산(石城山), 성남 천림산(天臨山), 양산 위천봉수(渭川烽燧) 등은 오늘날 그 자취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각각 다양한 형태로 내지봉수의 전형을 보여 준다. 석성산봉수는 타원형의 방호벽 안에 동-서 1열로 5기의 연조를 두고, 외부에 초가(草家)를 갖춘 형태를 하고 있다. 천림산봉수는 방호벽 안에 동-서 1열로 5기의 연조와 고사(庫舍)를 배치하고, 외부에 기와집을 갖춘 형태이다. 또한 장축을 이루는 동-서 방향으로 개구형의 출입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그에 비해 위천봉수는 장방형의 방호벽 안에 동-서 1열로 5기의 연조를 두고, 타원형의 방호벽 안에 고사 및 맞배지붕의 기와집을 배치하고 있다. 이처럼 각각 형태가 다른 2기의 방호벽을 붙여 놓은 사례는 국내에서 위천봉수가 유일하다.

이 3기의 봉수는 출입 시설의 형태가 모두 개구형이며, 석축으로 되어 있다. 또한 5기의 연조를 모두 방호벽 안에 배치한 일반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내지봉수의 일반적인 구조 및 형태를 추정하거나, 향후 원형을 복원할 때 참고할 만한 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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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김주홍, 『조선시대 봉수연구』, 서경문화사, 2011.
  • 김주홍, 『朝鮮時代의 內地烽燧』, 충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 원적산봉수대보존회, 『梁山圓寂山烽燧臺 精密地表調査報告』, 1991.
  • 차상찬, 『朝鮮史外史』, 명성사, 1947.
  •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성남 천림산봉수 건물지 발굴조사보고서』,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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