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해(魚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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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어[秀魚]로 만든 식해(食醢).

개설

어해(魚醢)는 원래 생선젓갈 또는 생선젓액을 의미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숭어식해를 어해라고 하여 국가적으로 행한 종묘(宗廟) 제례·사직단(社稷壇) 제례·영녕전(永寧殿) 제례·대보단(大報壇) 제례·경모궁(景慕宮) 제례·석전(釋奠) 제례·삼각산(三角山) 절제·선잠(先蠶) 절제·우사(雩祀) 절제·기우(祈雨)제·선농(先農) 절제·한강 절제·풍운뢰우(風雲雷雨) 절제·산천(山川) 절제·성황(城隍) 절제·목멱산(木覓山) 절제·고려시조(高麗始祖) 제례·단군(檀君) 제례·기자(箕子) 제례·여제(厲祭)·사한제(司寒祭)·영성제(靈星祭)·노인성제(老人星祭)·마조제(馬祖祭)·마사제(馬社祭)·마보제(馬步祭)·선목제(先牧祭)·보제(酺祭)·마제(禡祭)·관왕묘제(關王廟祭)·독신묘제(纛神廟祭)에서 대사(大祀)중사(中祀) 때 두(豆)에 담아 제물로 올렸다.

만드는 법

숭어의 비늘을 벗기고 아가미를 떼어 낸다. 아가미 쪽에서부터 꽂이를 배 쪽으로 밀어 내장을 제거한다. 깨끗이 씻은 다음 생선 뱃속에 소금을 채워 넣고 항아리에 소금을 켜켜로 뿌려 가면서 담아 누름돌로 눌러 놓는다. 뚜껑을 닫고 한 달 정도 지난 후 항아리에서 절인 숭어를 꺼내 소금을 제거하고 물기를 뺀다. 되게 지은 소금간한 쌀밥을 준비한다. 항아리 밑에 밥을 한 켜 깔고 그 위에 절인 숭어를 한 켜 깐다. 이렇게 반복하여 담아 돌로 눌러서 소금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 밀봉한다. 5~6개월 후에 쓸 수 있다.

이상의 만드는 방법이 정법이지만, 충청도의 남포·당진·덕산·비인, 전라도의 해남·무안에서는 얼음이 녹을 때쯤 숭어를 진공(進貢)받아 소금과 숭어를 켜켜로 항아리에 담아 절였다가 제사 하루 전에 씻어서 쌀밥과 합하여 버무린 다음 하룻밤 삭혀 신에게 올렸다. 이렇듯 정법대로 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시대에 올린 제사의 종류가 워낙 많아 6개월 정도 삭히는 숭어식해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든 어해를 공납으로 받기도 하였다. 1492년(세종 11) 창성(昌盛)의 진헌물목(進獻物目)에는 어해(魚醢)도 들어 있었다(『세종실록』 11년 5월 3일).

연원 및 용도

조선시대에 제물로 다른 생선보다 숭어식해를 고집한 이유는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숭어를 물고기의 왕으로 삼고 가장 즐겨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빼어날 수(秀) 자(字)를 써서 숭어[秀魚]라 했다. 언제부터 숭어를 즐겨 먹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각 도에서는 제물로 쓰기 위한 진공 외에 수라상에 올리는 밥반찬을 위해 매달 초하루에 숭어를 진공하였다. 수라상에 오를 정도로 귀하게 여긴 까닭에 국가 제향에서 신께 올리는 어해는 곧 숭어를 재료로 하는 숭어식해가 되었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국가 제례에서 제물로 올렸고, 일반 서민들의 제례에서도 식해란 명칭으로 제물로 올렸다.

참고문헌

  • 『만기요람(萬機要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태상지(太常誌)』
  • 김상보, 『음양오행사상으로 본 조선왕조의 제사음식문화』, 수학사, 1996.
  • 김상보,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수학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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