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사(哀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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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정을 나타내는 문체.

개설

애사(哀辭)는 제문(祭文)·조문(弔文)·뇌(誄) 등과 같거나 유사한 문체로, 한나라 때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양씨(梁氏)의 애사를 지은 것이 그 시초로 꼽힌다. 중국 양(梁)나라 때의 문학가 유협은 『문심조룡(文心雕龍)』 「애조(哀弔)」에서 "애사의 본질은 심정 면에서는 통상(痛傷)을 주안으로 하고, 문사 면에서는 애석(愛惜)의 느낌을 철저하게 표현함에 있다."고 설명하였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제문은 춘추시대에 비롯되었다. 진(秦)나라 목공이 죽자 대부 자거씨(子車氏)의 세 아들을 순장하였는데,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시경』「진풍(秦風)」의 「황조(黃鳥)」를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신명(神明)에게 고하여 비는 축사(祝詞)가 나오게 되었고, 죽은 이의 공적을 드러내고 애도하는 뇌, 사부(辭賦)에서 파생된 애사, 조문 등이 발달하였다.

내용 및 특징

애사는 원래 스무 살에 이르지 못하고 요절한 사람을 애도하는 글이다. 『문심조룡』에서는 "어려서 죽은 사람에게는 ‘애(哀)’라는 시호를 붙인다."고 하였다. 조비의 「금호애사(金瓠哀辭)」, 조식의 「행녀애사(行女哀辭)」, 반악의 「금록애사(金鹿哀辭)」와 「택란애사」 등은 모두 요절한 사람을 애도하는 명편이다. 그에 비해 반악의 「애영서문(哀永逝文)」처럼 죽음 자체에 대해 쓴 글도 있다. 또 안연지(顔延之)의 「송문황제원황후애책문(宋文皇帝元皇后哀策文)」은 황후의 덕을 찬미하는 것을 위주로 하면서 애도의 뜻을 나타낸 작품이다.

명나라의 서사증(徐師曾)이 지은 『문체명변』「애사」에 보면, 혹은 재주는 있었지만 쓰이지 못한 것을 애처로워하고, 혹은 덕망이 있었으나 장수하지 못한 것을 애통해한 글이라고 했다. 또 대상자가 어려서 덕을 이루지 못하였으면 총명하고 지혜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칭찬하고, 나약해서 일을 감당하지 못하였으면 애도하는 마음을 표정에다 더하여 쓰는 것이라고 하였다.

변천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가 지은 향가체의 「제망매가(祭亡妹歌)」가 애사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또 최치원(崔致遠)은 오방·토지·산신에게 올리는 제문을 한문으로 지었다. 그 뒤 한문으로 된 애제문이 많이 창작되어, 『동문선(東文選)』에는 많은 제문과 애사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식 제사가 정착되면서 애제문이 발달하였고, 그에 따라 애사도 많이 창작되었다(『세종실록』 6년 6월 16일) (『숙종실록』 10년 4월 3일).

한편, 조선시대 후기의 학자인 이건창(李建昌)은 강화 사기리에 거처하면서, 당대에 순국하거나 충절을 다한 인물들을 위해 여러 가지 글을 남겼다. 그 가운데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진무중군(鎭撫中軍)으로서 광성보(廣城堡)에서 미국군에 맞서 항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어재연(魚在淵)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진무중군어공애사(鎭撫中軍魚公哀辭)」가 있다.

참고문헌

  • 『문체명변(文體明辨)』
  • 「애사(哀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