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독(愼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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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가함을 뜻하는 말.

개설

신독(愼獨)의 개념은 『대학』과 『중용』에서 유래한다. 『대학』에서는 "이른바 그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듯 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호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니, 이것을 일러 자겸(自慊) 즉 스스로 만족함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것이다."라고 하여 신독은 자기 뜻을 성실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명하였다. 주희는 이 신독의 ‘독(獨)’의 의미에 대해 남이 알지 못하고 자신만이 홀로 아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홀로 있을 때에 삼가 선악의 기미를 잘 살펴야 한다고 하였다.

『중용』에서도 "숨겨진 것보다 더 드러남이 없으며 은미한 것보다 더 나타남이 없으니, 군자가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는 것이다."라고 하여 자신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주자학을 받아들인 조선에서는 내면의 수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신독을 중시하였다.

내용 및 특징

신독은 조선조에 사림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신독은 마음이 발동할 때 홀로는 삼가는 것으로서 신독에 힘써야 성정이 올바르게 되고 호오(好惡)가 분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독은 개인의 수신뿐만 아니라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가 되기도 하여 국왕에게 자주 건의되었다. 예컨대 1516년(중종 11) 경연에서 유용근(柳庸謹)이나 기준(奇遵)은 한가하고 국왕이 고요한 때에 근독(謹獨)하는 공부에 힘써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발동하지 않았을 때 존양(存養)하고 발동하여서는 성찰(省察)을 지극하게 하라고 하였다(『중종실록』 11년 10월 13일). 또한 1537년(중종 32) 대사헌양연(梁淵) 역시 남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도 신독에 힘쓰면 마음이 올바르게 되고 호오가 분명해지기 때문에 궁중이 엄숙해진다고 하였다(『중종실록』 32년 12월 6일). 그리고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보덕(輔德)정원(鄭源)은 성정의 대본과 달도는 천지를 제자리에 위치지우고 만물을 기를 수 있는데, 그 단서가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계구, 홀로 있을 때도 삼가는 신독에 있다고 하였다(『중종실록』 37년 11월 12일).

조선후기에도 이러한 신독 공부의 필요성이 자주 언급되었다. 특히 송시열은 현종에게 상소하여 국왕이 신독 공부에 힘써 천리를 밝히고 사욕을 없애야 천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였고(『현종개수실록』 9년 11월 20일), 숙종에게도 신하를 대할 때 잡념을 없애고 엄숙하게 하며, 내전에서도 환관과 빈첩에게 그리할 것을 요청하였다(『숙종실록』 6년 10월 12일).

조선시대에 신독에 대해 가장 깊은 이해를 보인 왕은 정조이다. 정조는 신독 공부에서 선악의 기미를 살피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즉 성의(誠意)는 『대학』의 큰 조목이고 신독(愼獨)은 『중용』의 가장 중요한 공부인데, 신독 두 글자는 아무리 미세한 일이라도 자신만 아는 것이니, 선악의 기미를 잘 살펴서 선은 함양하고 악념을 없애서 항상 경외하는 마음을 보존하여 도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던 것이다(『정조실록』 3년 1월 23일).

참고문헌

  •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儒敎大辭典)』, 박영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