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고(食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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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균관의 식당지기가 기상 및 식사 시간을 알리기 위해 치던 북.

개설

식고는 동재(東齋) 맨 위쪽 방의 서창(西窓) 밖에 매달았는데, 식당지기가 이 북을 쳐서 새벽 기상, 세수, 식사 시간 등을 알렸다[『영조실록』 45년 10월 13일].

내용 및 특징

성균관의 식당지기가 매번 식고를 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유생들의 식당 출입 명부인 도기(到記)를 가지고 왔다. 왕이 불시에 성균관 유생을 불러 시험을 볼 때가 있었는데 이 경우 대개 춘당대 위에 식당을 차리고 동·서의 헌(軒)과 기재소(寄齋所)에 이르기까지 앉을 만한 곳에는 모두 돗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식고를 춘당대 주변 작은 전나무에 옮겨 매달고, 식당지기가 북을 치면 동·서재의 당번 부목(負木)이 유생들을 불렀다. 그러면 유생들이 동서로 나누어 식당에 입실하여 정좌한 후 식사를 하였다.

변천

1769년(영조 45) 왕이 경연에서 대사성에게 명하여 생원·진사 각기 한 사람씩 데리고 월대(月臺)에 입시하게 하였다. 그리고 생원·진사에게 『논어』를 강하게 하였다. 그 뒤 태학(太學)의 식고를 옮겨 궁전의 뜰에 매달아 놓고 장차 태학의 예에 의거하여 음식을 차려 놓으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러 유생이 이미 점심을 먹었다고 하자 수라간에서 음식을 차려 유생들을 먹이게 하고, 왕도 한 소반을 들었다[『영조실록』 45년 10월 13일].

참고문헌

  • 『반중잡영(泮中雜詠)』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