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時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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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맞게 대처하여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

개설

시중(時中)은 『중용』 2장의 "군자가 중용을 이룸은 때에 맞게 하기 때문이다[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라는 문장에서 비롯된다. 맹자는 여러 성인(聖人)을 열거하면서 공자를 "성인 중에서도 때에 딱 맞게 대처하신 분[聖之時者]"으로 이상화하였다.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성인 중 맑은 사람[聖之淸者], 이윤(伊尹)은 성인 중 맡길 만한 사람[聖之任者], 유하혜(柳下惠)는 성인 중 화합하는 사람[聖之和者]으로 처세가 고정되어 있는 데 비해 공자는 어느 때든 알맞게 하는 분으로 높이 받들어졌던 것이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에 시중이라는 말은 ‘때에 맞게 행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조선 태종이 즉위하자 문하부(門下府) 낭사(郞舍)에서 종묘(宗廟)에 고하는 시기를 시중의 도에 맞추어 실시하자고 하였고, 태종이 양위하려고 하자 권근이 "진실로 나라가 태평한 때를 당하여 임기응변식의 권도(權道)를 쓰면 시중의 마땅함을 잃게 되어 재앙이 생긴다."고 하며 반대하였다(『태종실록』 6년 8월 24일). 즉 나라가 태평한 때에는 떳떳한 도리를 다 해야지 권도를 쓰면 시중에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초에 이미 시중의 의미가 때에 알맞게 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492년(성종 23) 홍문관 직제학김응기(金應箕) 등은 승려의 신분을 공인해주는 도첩제를 폐지할 것을 건의하면서 "마땅히 지킬 것은 지키고 변통할 것은 변통하는 것이 성현의 시중이며 수성(守成)하는 요체(要諦)"라고 하여(『성종실록』 23년 1월 19일), 선대의 법이라도 시속에 알맞게 고쳐야 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시중의 의미에 대해서는 『정조실록』에서 가장 자세하게 논하고 있다. 정조는 행동거지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감정에서 시중의 의미와 위치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정조는 『논어』 「향당편」에 대한 경연에서 "이 편(篇)의 내용은 모두 경(敬)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행동거지가 일의 마땅함에 알맞은데, 시중의 뜻이 그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하여, 어느 때에도 경은 시중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고(『정조실록』 3년 1월 23일), 중용은 높고 요원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도리에서 그 알맞은 것을 행하는 것이니, 중용은 시중과 표리를 이룬다고 하였다(『정조실록』 15년 4월 30일). 또한 정조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칠정이 하나의 마음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칠정 중 하나가 격분하면 나머지 모두가 발동되어 절도를 잃게 된다고 하여, 치우치지도 기울지도 않고 지나침도 어긋남도 없는 시중의 의미가 크다고 논하였다(『정조실록』 18년 5월 25일).

참고문헌

  •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儒敎大辭典)』, 박영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