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치(順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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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청(淸)나라 세조(世祖) 대에 사용한 연호로(1644년~1661년), 조선(朝鮮)에서는 인조(仁祖)와 효종(孝宗), 현종(顯宗)이 사용한 연호.

개설

중국 청나라의 제 3대 황제이자 순치제(順治帝) 혹은 순치 황제(順治皇帝)라고도 불리는 세조의 연호이다(1644년~1661년). 이때에 청나라가 중국 대륙의 통치를 시작하였으므로, 순치(順治) 연호는 청나라 최초의 정통 연호이기도 하다.

세조는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올랐기 때문에 그의 숙부인 도르곤이 섭정을 하였고, 1650년 12월 도르곤이 사망하면서 1651년부터 세조가 친정(親政)을 하였다. 순치 시기동안 세조는 명(明)나라 잔존 세력 대부분을 평정하여, 청나라 발전에 기틀을 마련하였다. 더불어 명나라의 정치 체계를 계승하고 한인(漢人)을 등용하는 등 사회 안정에도 힘을 기울였다.

조선에서는 인조22년부터 현종2년까지가 이에 해당하는데, 조선의 세자(世子)였던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청나라의 인질로 잡혀 있다가 인조23년인 1645년에야 조선으로 영구 귀국할 수 있었다. 소현세자는 귀국 후 병을 얻어 사망하였는데, 인질로 잡혀 있는 동안 청나라 인사들과도 가깝게 지냈으며, 귀국 후에는 청나라와의 교역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청나라와의 관계가 밀접하였기 때문에 독살되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조선에서는 명나라를 멸망시켰을 뿐만 아니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일으키기까지 한 청나라에 대한 배척이 심하였다.

한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순치 연호가 등장하는 경우는 크게 3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우선 시기를 알리는 연대(年代) 표시로, 즉 보통 중국 연호를 사용할 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조선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하여 중국의 예를 찾아볼 때 순치 연간을 살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순치 연호 사용 유무(有無)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공식 문서 등에서 순치 연호를 사용하는 것, 또는 개인들이 순치 연호를 사용하는 것 등에 대해서 계속하여 논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 내 청나라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였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라고 하겠다.

아울러 순치는 『조선왕조실록』의 각 기사 날짜에 사용된 첫 번째 청나라 연호로, 1644년부터 사용되었다. 순치 연호를 사용하기 직전까지는 명나라의 연호가 사용되었고, 마지막으로 사용된 명나라의 연호는 ‘숭정(崇禎)’이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청사고(淸史稿)』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