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각(水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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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가운데나 물가에 지은 정자, 혹은 어구(御溝) 위나 우물 주변에 지은 건물.

개설

수각은 강가나 호숫가 등 물가에 세운 정자나, 누각 중에서도 특히 연못 안의 섬에 세운 정자를 말한다. 때로 연못에 섬을 만들지 않고 물속에 돌기둥을 세워 그 위에 건물을 짓기도 한다. 이같이 지은 수각에 오르면 물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주변의 경관과 함께 물이 주는 특별한 감흥으로, 궁궐의 후원이나 사대부의 원림에 작은 수각을 지어 휴식과 완상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큰 규모의 연못을 조성하고 그곳에 누각을 지어 왕실의 행사와 연회의 장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경복궁의 경회루(慶會樓)가 있다.

그 외 조선후기까지 궁궐 내 명당수가 흐르는 금천(禁川) 어구(御溝)와 행각이 교차하는 경우, 어구에 다리를 놓듯이 교각을 세우고 돌 귀틀을 얹은 위에 지은 건물을 수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경우 수각에 철창으로 문을 달고, 주변의 문을 담당하는 수문장에게 관리하도록 하였다. 수각 아래의 어구로 사람이 몰래 드나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용 및 특징

수각은 주로 연회를 위해 연못에 지었다. 1420년(세종 2) 상왕인 태종이 직접 지휘하여 양주의 풍양궁(豐壤宮)에 수각을 지었다(『세종실록』 2년 6월 22일).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때 연못을 파고 축대를 쌓아 수각을 지었으며 낙성연과 연회를 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경복궁 경회루나 경회루 아래를 수각으로 지칭하는 용례가 있다.

다른 용례는 1396년(태조 4) 『조선왕조실록』 기사에 나타난다. 경복궁을 지었을 때 홍례문(弘禮門) 안쪽에는 명당수인 금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났다. 여기에 영제교라는 다리를 놓았는데 그 동쪽과 서쪽에 각각 3칸의 수각을 세웠다고 한다(『태조실록』 4년 9월 29일). 이 수각은 금천 위에 지은 것으로 후대의 창경궁 홍화문(弘化門) 행각이나 고종대에 중건한 경복궁 흥례문(興禮門) 행각처럼 주위에 행각 없이 어구 위에 독립된 건물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궁궐 외에도 사찰이나 민간에서 우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도 수각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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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조선전기의 『조선왕조실록』에는 수각을 주로 물가에 지은 정자나 누각으로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같은 경우에 ‘수각’이라는 보통명사 대신 정자나 누각의 이름을 적었다. 조선후기의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되는 수각은 어구 위에 설치된 건물을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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