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계(小學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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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소학』을 익히고 실천하려는 모임.

개설

소학계(小學契)는 조선 연산군 때에 남효온(南孝溫), 강응정(姜應貞), 박연(朴演) 등이 『소학(小學)』의 도를 실천하기 위하여 만든 결사(結社)로, 이들은 대부분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희생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강응정은 벼슬도 사양하고 김용석(金用石)·신종호(申從濩)·박연 등과 함께 향약(鄕約)을 만들고, 안응세(安應世)·홍유손(洪裕孫)·김굉필(金宏弼)·이종윤(李宗允) 등과는 소학의 모든 범절을 익히고 실천하며 이로써 입지(立志)의 바탕을 삼는다는 취지로 소학계를 만들어 소학을 강론하였다(『성종실록』 9년 4월 24일) (『성종실록』 9년 5월 7일). 이들 조직이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무오사화에서였으며,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소학계에 속해 있던 대부분이 희생되었다(『연산군일기』 4년 8월 16일).

조직 및 역할

조선전기에 김굉필 등 사림파들은 『소학』을 중요한 실천 덕목으로 생각하였다. 김굉필은 『소학』을 강신(講信)하는 계를 통하여 동문이나 사제·사우·혼인 관계 등을 활용하여 사림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하나의 정치적인 조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조직 속에는 소학계와 정지교부계(情志交孚契)가 있다. 소학계는 『소학』의 도(道)를 실천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계의 형식을 통하여 정치적 네트워크로서 기능을 하고 지속성을 띠면서 16세기 정치 사회 개혁을 주도한 조광조(趙光祖)와 김안국(金安國)까지도 연결되었다.

참고문헌

  • 윤인숙, 「김굉필의 정치 네트워크와 소학계」, 『조선시대사학보』59, 2011.
  • 윤진욱, 「조선 전기 ‘소학계’ 연구」, 『경주사학』32,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