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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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이나 소, 돼지, 노루, 사슴, 꿩, 닭 등의 육류를 말린 포.

개설

『물보(物譜)』의 음식 부분을 보면, 석(腊)은 ‘건수급어야(乾獸及魚也)’라 했으니, 조선에서 ‘석’은 말린 고기와 생선을 의미한다. 『훈몽자회(訓蒙字會)』 식찬(食饌)에서 석은 포 중에서도 뼈가 있는 것[有骨者]을 지칭하였다. 석이 육포를 의미하는 경우에는 ‘석육(腊肉)’, 어포를 의미하는 경우에는 ‘어석(魚腊)’이라고 했다. 『광재물보(廣才物譜)』에 따르면, 석은 포(脯)의 이명(異名) 또는 속명(俗名)에 해당한다고 했으므로 석은 곧 포와 같은 말로도 인식되었다.

원산지 및 유통

조선시대 왕실에서 쓰는 석은 포와 함께 공물(貢物)로 받았으며(『문종실록』 1년 5월 7일), 어석의 경우에는 사재감(司宰監)에서 받아 관리하였다(『예종실록』 1년 8월 16일).

연원 및 용도

조선시대에는 어류나 육류를 말려서 포, 즉 석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장기간 저장하거나 원거리 유통이 가능하도록 가공한 것이다. 중종 때 김안로(金安老)는 그의 위세를 두려워한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많이 받았지만,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꿩이나 닭 같은 것도 모두 석(腊)으로 만들어 자기 집으로 보냈다고 한다(『중종실록』 3년 1월 20일). 이 기사에서 보듯이, 꿩이나 닭을 남에게 주지도 않고 바로 다 먹을 수도 없을 때 택한 방법이 석이었다. 이렇게 만들어 둔 석은 신선한 육류와 어류를 구하기 어려울 때 식재료로 이용되었다.

포를 만드는 방법은 조선시대 조리서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석을 만드는 방법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거가필용(居家必用)』을 인용하여 제시한 ‘아안석방(鵞雁腊方)’이 거의 유일하다. 끓는 물에 데쳐 내장을 제거한 거위나 기러기에 소금·천초·회향·시라[蒔蘿]·진피 등을 안팎으로 고루 문질러 보름간 절여 두었다가 햇볕에 말려 만들었다.

참고문헌

  • 『광재물보(廣才物譜)』
  • 『물보(物譜)』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훈몽자회(訓蒙字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