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라(夕水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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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에서 왕에게 올리는 저녁밥을 높여 이르던 말.

개설

조선시대 궁중에서 평소 일상의 식사는 5차례인데, 이른 아침의 자리조반[初朝飯], 아침의 조수라[朝水剌], 저녁의 석수라[夕水剌], 낮의 낮것[點心], 밤에 내는 야참[夜食]이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궁중에서 아침수라[朝水剌]는 10시가 지나야 드시고, 저녁수라[夕水剌]는 오후 5시경에 드셨다.

변천

1700년대 궁중의 일상식은 1795년(정조 19) 화성현륭원에 행행(行幸)한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찬품(饌品)조에 남아 있다. 음력 윤2월 9일 창덕궁을 나와 음력 윤2월 16일 환궁까지 8일간의 자궁·왕·군주께 올린 일상식의 기록이다. 일정 중에 석수라는 9일은 시흥참(始興站)에서, 10~14일은 화성참(華城站)에서, 15일은 시흥참에서 총 7회 올렸다.

화성참에서 윤2월 10일에 자궁께 올린 석수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궁께 올린 상은 원반(元盤)과 협반(挾盤)인데, 모두 검은 칠을 한 족반(足盤)으로서 원반에는 은기로 12기를 올리고 협반에는 화기로 3기를 올렸다. 밥[飯] 1기는 백반(白飯)이고, 국[羹] 1기는 양숙(羘熟)이고, 찌개인 조치 2기는 생복초(生鰒炒) 1기와 생치볶기 1기이고, 구이 1기는 침방어(沈魴魚)구이이다. 약산적 1기와 자반 1기는 민어·전복포·대구다식·약포·장볶이를 한데 담았고, 젓갈 1기는 연어란·하란이고, 채 1기는 도라지 잡채이고, 침채 1기는 석박지[交沈菜]이고, 담침채 1기는 꿩김치인 치저(雉菹)이다. 즙장 1기와 장 3기, 즉 간장·초장·겨자 각 1기로 이상을 원반 은기에 담아 올렸다. 협반에는 탕 1기는 잡탕이고, 각색적은 1기로 꿩과 쇠꼬리적이고, 전유어 1기를 올렸다.

고종과 순종 재위 당시 수라상은 아침과 저녁 2차례 올렸는데, 12첩 반상차림으로 수라와 탕을 2가지씩 올리고 기본 찬품과 쟁첩에 담는 12가지 찬물로 구성했다.

수라는 백반과 팥 삶은 물로 지은 찹쌀밥인 붉은 빛의 홍반(紅飯) 2가지를 수라기에 담고, 탕은 미역국[藿湯]과 곰탕 2가지를 모두 탕기에 담아 올려 그날에 따라 좋아하는 것을 골라 드시도록 준비했다. 조치는 토장조치·젓국조치 2가지이고, 찜·전골·침채 3가지가 기본 음식에 속했다. 찬물 12가지는 다양한 식품 재료로 조리법도 각기 달리하여 만들었다. 상 위에 놓이는 장류는 청장·초장·윤집·겨자집으로 그날의 찬물에 맞게 종지에 담았다. 윤집은 초고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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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 『한중록(閑中錄)』
  • 강인희, 『한국식생활사』, 삼영사, 1978.
  • 김명길, 『낙선재 주변』, 중앙일보·동양방송, 1977.
  • 김상보,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수학사, 1995.
  •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연구』, 일지사, 1987.
  • 신영훈, 『조선조 궁중생활연구』, 문화재관리국, 1992.
  • 황혜성 외,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廷料理通攷)』, 학총사, 1957.
  • 김춘련, 「18세기 궁중음식고-원행을묘정리의궤를 중심으로」, 『대한가정학회지』22(4), 1984.
  • 이성우, 「조선왕조 궁중식에 관한 문헌학적 연구」, 『한국식문화학회지』1(1), 1986.
  • 황혜성 외, 「궁중의 식생활」, 『한국음식대관』6권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