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璽)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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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새 |
한글표제 | 새 |
한자표제 | 璽 |
상위어 | 보새(寶璽), 새보(璽寶), 새인(璽印), 인장(印章) |
하위어 | 국왕인(國王印), 압인(押印), 어보(御寶), 어압(御押), 전국보(傳國寶) |
동의어 | 국보(國寶), 국인(國印), 보(寶) |
관련어 | 국새(國璽), 새서(璽書), 새절(璽節), 옥새(玉璽), 인(印), 장(章) |
분야 | 교육·출판/출판/인장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중국, 일본 |
시대 | 삼국시대~대한제국 |
집필자 | 성인근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새(璽) |
국권의 상징으로 국가적 문서에 사용하던 국왕의 도장.
개설
새(璽)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용한 인장의 명칭이다. 발생 초기에는 새(爾/土), 새(爾/金)爾+土? 爾+金?)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선진시대 관인·사인 유물에서 다양한 ‘새’ 자의 용례를 볼 수 있다. 『육서정온(六書精蘊)』에서는 “새는 인장으로 ‘이(爾)’와 ‘토(土)’로 구성되었다. 옛날에 글자를 만드는 자가 ‘너[爾]에게 명하여 땅[土]을 지키게 한다’는 뜻을 취하였다.”고 하여 문자학적 해석을 더하였다.
내용 및 특징
전근대에는 인장에 사용하는 글자에 엄격한 규정을 두어 제후국인 조선에서는 국새에 ‘새’ 자를 사용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 명·청으로부터 받은 공식적 국새는 모두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으로 ‘인(印)’ 자를 사용하였고, 손잡이 모양은 신하의 도리를 상징하는 거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국새의 인문에 ‘새’ 자를 쓴 시기는 대한제국 13년 동안에 불과하며, 손잡이로 용을 올린 기간도 이때가 유일하다. 당시 제작된 새보 가운데 ‘새’ 자를 쓴 예로는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어새(皇帝御璽)가 있다.
특히 황제어새의 ‘새’ 자에서 주목되는 점은 ‘리(㸚)’ 자의 두 획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새’ 자를 해체해 보면 +冂 + 㸚 +玉이 된다. 그런데 황제어새의 같은 글자를 풀어 보면 +网 +玉이 된다. 이러한 글자의 용례는 명·청대 새보는 물론, 대한제국 당시에도 보이지 않는 특이한 사례이다. 다만 순종이 황태자 시절에 사용한 개인 용도의 사인(私印)에서 ‘황제어새’처럼 생략된 형태의 ‘새’ 자를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변천
선진시대에는 관인과 사인을 막론하고 모두 ‘새’ 자로 통칭하였는데, 쓰는 방법에 있어서는 국가와 지역에 따라서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마국권(馬國權)은 그의 저술 『고새문자초탐(古璽文字初探)』에서 춘추전국시대의 고새에서 인장을 나타내는 ‘새’ 자는 주로 쇠 금(金) 옆에 ‘’·‘’의 형태로 나타나며, 상단의 ‘’·‘’은 인장의 손잡이[鈕]를 측면에서 본 형태로 해석하였다. 또한 아래의 ‘小(소)’ 자 형태는 인장을 찍었을 때 나타나는 문양을 형상하였다고 보았다.
선진시대에는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 ‘새’ 자로 통칭하다가, 진나라 시황제가 중원을 통일한 이후로 ‘새’는 천자만이 쓰고 신하나 백성들은 모두 ‘인(印)’이나 ‘장(章)’ 자를 사용도록 규정하였다. 원나라 성희명(盛熈明)의 『법서고(法書考)』에는 “진(秦) 이전에는 백성들이 모두 금옥(金玉)으로 인장을 만들고 용호(龍虎)로써 손잡이를 만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였다. 진 이래로 천자만이 ‘새’로 칭하고 또 옥으로 만들어 군신들은 감히 쓸 수 없었다. 전국 칠웅 때에 신하의 인장을 처음으로 ‘인’이라 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한관의(漢官儀)』에는 “제후 왕은 황금에 낙타 손잡이인데 그 문(文)은 ‘새’라 하고, 열후(列侯)는 황금에 거북 손잡이를 사용하고 그 문은 ‘장’이라 하고, 어사대부(御史大夫)는 금인(金印)에 자색(紫色) 끈으로 문은 ‘장’이라 하고, 중이천석(中二千石)은 은인(銀印)에 거북 손잡이로 문은 ‘장’이라 하고, 천석(千石)에서 사백석(四百石)에 이르는 대부는 동인(銅印)에 문은 ‘인’이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새’ 자의 사용 범위가 천자로 국한된 이유와 신분에 의해 분리된 인장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다. 한편 당 무후 때에는 ‘새’의 음이 ‘사(死)’와 같다 하여 ‘새’를 ‘보(寶)’로 고치기를 명하였다. 당 중종 때에는 다시 ‘새’로 칭하였고, 현종 때에 또다시 ‘보’로 칭하였다. 그 후 원·명·청대에는 ‘새’ 자와 ‘보’ 자를 함께 사용한 사례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참고문헌
- 『고새문자초탐(古璽文字初探)』
- 『법서고(法書考)』
- 『한관의(漢官儀)』
- 『한국역사용어시소러스』, 국사편찬위원회, http://thesaurus.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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