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床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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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 연향 때 잔치 음식상에 꽂는 가화(假花).

개설

잔치 때 수파련·홍도화 등의 길상화(吉祥花)를 만들어 고여 담은 음식 위에 꽂는 조화를 말한다.

연원 및 변천

상화에 대한 기록은 고려왕실의 연향과 관련하여 처음 나온다. 고려왕실에서는 금·은·견·모시를 재료로 하여 만든 다양한 상화(床花)를 연회에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의 상화 사용을 속례(俗禮)로서 받아들였다. 그러나 1749년(영조 25) 영조는 사치와 낭비를 없애는 차원에서 상화를 종이로 만들어 사용토록 했고, 이후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지켜졌다. 1759년 영조는 궁중 혼례 시 동뢰연 상에만 상화를 꽂도록 함으로써 더욱더 절약정신을 강조하였다(『영조실록』 35년 5월 7일).

궁궐 잔치인 진찬(進饌)이나 진연(進宴) 때의 잔칫상에는 반드시 상화를 꽂았다. 1827년(순조 27) 자경전(慈慶殿)에서 열린 연향에도 종이로 만든 상화를 사용하였다. 대수파련(大水波蓮)·중수파련(中水波蓮)·소수파련(小水波蓮)·이층수파련(二層水波蓮)·홍도별간화(紅桃別間花)·홍도간화(紅桃間花)·홍도삼지건화(紅桃三枝建花)·홍도삼지화(紅桃三枝花)·홍도건화(紅桃建花)·삼색국화(三色菊花)·삼색도화(三色挑花)·유자화(柚子花)·시자화(柿子花)·청과화(菁瓜花)·복분자화(覆盆子花)·목단화(牧丹花)·월계화(月桂花)·포도화(葡萄花) 등으로 구성된 20종류이다.

순조에게 올린 음식상의 상화를 살펴보면, 진찬안에는 당화기(唐畵器) 46기에 음식을 고여 담고 대수파련 1개, 중수파련 2개, 홍도별간화 15개, 홍도간화 5개, 삼색국화·삼색도화·유자화·시자화·청과화·복분자화·목단화·월계화·포도화·홍도삼지건화 각각 1개로 구성된 33개의 상화를 꽂았다. 별행과상(別行果床)에는 유기(鍮器)와 자기(磁器) 30기에 음식을 고여 담고 이층수파련 3개, 홍도삼지화 2개, 목단화 15개, 홍도건화 6개로 구성된 26개의 상화를 꽂았다. 진어소반과에는 당화기 23기에 음식을 고여 담고 소수파련 1개, 홍도별간화 5개 외에 삼색국화·삼색도화·유자화·복분자화·삼지별건화·시자화 각각 1개로 구성된 12개의 상화를 꽂았다. 삼미(三味)의 미수상에는 각각 유기와 자기 15기에 음식을 고여 담고, 초미(初味)·이미(二味)·삼미(三味) 모두에 각각 목단화 2개, 홍도건화 1개, 홍도삼지화 1개로 구성된 4개의 상화를 꽂았다.

형태

상화의 값을 보면 대수파련은 40냥, 중수파련은 30냥, 소수파련은 30냥, 각색 절화는 2냥, 월계화는 1냥 5전, 홍도삼지화는 1냥, 홍도별건화는 8전, 홍도별간화는 5전, 홍도건화는 5전, 홍도간화는 3전이다.

가장 값이 비싼 대수파련은 밀랍을 사용하여 연꽃과 연잎을 만들고 잎과 잎 사이에는 월계화와 홍색·푸른색의 복숭아류를 끼워 넣었다. 앞부분에는 선동(仙童) 10인이 금술잔과 은술잔을 받들고 있는데, 술잔에는 남극노인(南極老人)이 있고, 대평세월(大平歲月)·수부다남(壽富多男)이라는 8개의 금자(金字)를 새겼다. 꽃과 잎이 드문드문 있는 것을 간화라 하고 꽃과 잎이 많은 것을 건화라 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조선왕실에서 연향 때 사용하던 상화는 민가에도 전해졌다. 백성들은 혼례 때 목단화 등의 상화를 음식에 꽂아 큰상을 차렸다. 무속(巫俗)에서도 받아들여, 특히 서울 굿 상차림에서의 상화는 궁중연향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
  • 김상보,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수학사, 1995.
  • 김상보, 『조선왕조 혼례연향음식문화』, 신광출판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