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社日)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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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사일 |
한글표제 | 사일 |
한자표제 | 社日 |
관련어 | 추분(秋分), 추사일(秋社日), 춘분(春分), 춘사일(春社日) |
분야 | 생활·풍속/풍속/행사 |
유형 | 의식·행사 |
지역 | 대한민국, 중국 |
시대 | 삼국~조선 |
집필자 | 최진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사일(社日)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14년 1월 18일, 『태종실록』 14년 1월 18일 |
춘분과 추분을 전후로 가장 가까운 무일(戊日)로, 토지신인 사(社)에게 제사 지내는 날.
개설
사일은 봄과 가을에 두 차례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날이다. 그중 봄은 춘사일(春社日)이라 하고 가을은 추사일(秋社日)이라 한다. 춘·추분(春·秋分) 외에 사일은 입춘과 입추로부터 다섯 번째 무일(戊日)에 들기도 한다. 춘사일은 24절기 중 첫 절기로 2월 4일경인 입춘과 4번째 절기로 3월 21일경인 춘분을 기준으로 정해지며, 24절기 중 13번째 절기로 8월 8일경인 추사일은 입추와 16번째 절기로 9월 22~23일경인 추분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춘사일에 토지신에게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추사일에는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고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제를 지낸다.
연원 및 변천
토지신인 사(社)에 지내는 제사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274년(고려 충렬왕 1) 이전에는 사일을 봄과 가을의 가운데 달[仲月]의 마지막 무일[遠戊日]로 하였는데, 지태사국사(知太史局事)오윤부(伍允孚)가 송과 원의 역서에는 모두 달의 첫 무일[近戊日]을 사일로 하였으므로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때부터 사일은 춘·추분에서 가장 가까운 무일로 바뀌었고, 이날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조정에서 내린 예제에 의해 주부군현(州府郡縣)에서 모두 사(社)를 세우고, 또 향촌(鄕村)에 이사(里社)를 세웠다. 그중 사(社)에는 수령이 때때로 제사를 지냈다(『태종실록』 14년 1월 18일). 봄과 가을 사일에 모두 제사를 지냈는데, 사일을 전후해 비가 오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다. 중국의 농서 『사시찬요(四時纂要)』를 인용한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춘사일을 전후하여 비가 내리면 그해 농사는 풍년이지만 과일이 적게 난다고 하며, 추사일을 전후하여 비가 오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든다고 한다.
절차 및 내용
사일에는 오토(五土)와 오곡(五穀)의 신(神)에게 제사 지내고, 농사에 좋도록 비가 오고 날이 개기[雨暘]를 기도하였다. 사일에 제를 지내기 위해 그 준비 과정에도 많은 정성을 들였다. 기일보다 앞서 정성스럽게 제물을 준비하다가 사일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다. 제사에는 양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술, 과일, 향, 초, 종이를 제물로 올렸으며, 제사가 끝나면 참석자들이 한데 모여 술을 마셨다(『태종실록』 14년 1월 18일). 사일에 제를 지낼 때 연주되는 음악은 사고(社鼓)라 이른다. 주로 북 종류가 연주된 듯하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민간에는 사일에 비가 내리면 한 해 풍년이 든다는 설이 전해진다. 사일을 기준으로 철새의 움직임을 파악하였는데, 제비는 춘사일에 강남에서 왔다가 추사일에 돌아간다고 하며, 기러기는 춘사일에 갔다가 추사일에 돌아온다고 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산림경제(山林經濟)』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