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司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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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앙의 오위(五衛)에 소속된 정9품 서반직.

개설

군의 말단 벼슬 중의 하나로 조선초기에는 대장(隊長)대부(隊副)로 불리던 관제이나 이는 정식 품관이 아니었다. 이후 관제 정비를 통해 정9품의 정식 관제로 법제화되었다. 사용(司勇)은 제정 당시 수도의 방위와 치안 유지 등 군사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나, 양난 이후 오위제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이후에는 현직이 없는 문관, 무관, 음관 등에게 녹을 주기 위한 구실로 사용되었다.

담당 직무

조선조에 들어와 처음으로 문무 관제를 정했을 때 서반에 대해서는 정·종9품의 관계(官階)를 설치하지 않고 다만 중앙군 조직인 십위(十衛)와 도부외(都府外)에 정9품 위(尉)와 종9품 정(正)을 두었다(『태조실록』 1년 7월 28일). 이는 고려시대 중앙군 조직인 이군(二軍) 육위(六衛)의 하급 지휘관이었던 정9품의 오위(伍尉)와 품외(品外)인 대정(隊正)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394년(태조 3)에 정도전의 주도로 군제를 개편하면서 고려의 유제(遺制)를 가급적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위는 대장으로, 정은 대부로 고치고, 이를 도부외에도 적용시켰다. 그렇지만 9품 관계는 여전히 마련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대장과 대부는 정식 품관이 되지 못하고 유품(流品) 외의 서인직(庶人職)으로 되었다. 그 결과 서반에 제수되는 자들이 거의 모두 9품을 거치지 않고 8품으로 뛰어올라 임명되는 심각한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마침내 1436년(세종 18)에 서반 정·종9품의 관계를 새로이 설치하되 모두 사용으로 호칭하도록 하며 녹과(祿科)는 모두 정품(正品)을 따르게 하였다(『세종실록』 18년 윤6월 19일). 일단 정·종의 구별 없이 9품의 경우 통틀어 사용으로 불렀다. 그러나 녹과가 전부 정품이라 실질적으로는 정9품만 있는 것이고 종9품은 없었다.

1447년(세종 29)에 문관직인 동반에는 9품까지 정·종의 나눔이 분명한데 무관직인 서반의 사용은 정품만 있어서 문제가 된다며 300명의 사용 중에서 100명은 정품으로, 200명은 종품으로 삼았다(『세종실록』 29년 10월 23일). 동반의 예에 맞추어 사용을 억지로 정9품과 종9품으로 나눈 것이다. 그런데 후대의 종9품에 해당하는 부사용(副司勇)의 원형에 해당하는 섭사용(攝司勇)이 이후 기록상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종9품 사용을 섭사용으로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드디어 1466년(세조 12)에 대대적으로 관직을 정비하면서 섭사용을 부사용으로 고쳤는데, 이로써 사용이 명실상부한 정9품이 되었다.

변천

『경국대전』에서는 정9품, 정원 42명으로 규정되었다. 그런데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중앙의 5위 조직은 그 기능이 정지되었고, 호군 이하는 관명(官名)만 유지하면서 녹과(祿窠)를 줄여서 승진 또는 강등하여 내부(來付)한 각색(各色) 인원(人員)을 대우하도록 했다. 사용의 경우 『속대전』에서는 정원 18명을 줄여 24명이 되었다. 모두 녹봉은 있으나 실무는 없는 원록체아(原祿遞兒)로 규정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민현구, 『조선초기의 군사제도와 정치』, 한국연구원, 1983.
  • 박용운, 『고려시대 관계·관직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97.
  • 천관우, 『근세조선사연구』, 일조각, 1979.
  • 윤훈표, 「5위체제의 성립과 중앙군」, 『한국군사사 5 조선전기Ⅰ』, 육군본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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