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관(祕書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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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와 내각, 각 부(部)의 대신을 보좌하던 대신관방(大臣官房) 소속의 관직.

개설

비서관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처음 등장한 관직명이다. 총리대신, 의정, 각 부 대신을 보좌하였다. 비서관은 대체로 1명이었고 대신관방에 소속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894년 갑오개혁으로 관제가 개편될 때 비서관은 의정부 총리대신, 8아문(八衙門)의 대신 그리고 궁내부(宮內府) 대신을 보좌하였다. 의정부 총리대신은 서기관급의 비서관이 1명 배치되었고, 각 아문에는 주사(主事)급이 총무국 사무를 보면서 비서관을 겸임하였다. 궁내부 대신에게도 주사급의 비서관 1명을 두었다.

이듬해 3월 다시 관제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총리대신과 각 부 대신을 보좌하는 비서 조직이 체계화되었다. 내각과 각 부의 기밀문서를 관장하고 해당 관서 직원의 임명과 퇴직에 관한 사항을 맡는 비서과를 두었고, 이때 주임관인 참서관(參書官)이 비서관을 맡았다. 이로써 한말 의정부와 내각의 총리 혹은 대신을 보좌하는 비서관직이 정비되었다. 이러한 비서관 제도는 갑오·을미개혁에서 총리와 대신들의 권한과 업무가 집중되는 과정에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조직 및 역할

1895년 4월 내각과 각 부에 분과 규정이 마련되었는데, 군부를 제외하고 모든 부서에 대신관방 소속의 비서과가 설치되었다. 비서과의 업무는 해당 관서별로 차이가 있었다. 내각의 경우에는 기밀에 관한 사항이나, 관리의 신분이나 임명·퇴직에 관한 사항을 담당하였다. 반면, 외부(外部)의 경우에는 그 외에도 대신의 관인(官印)과 부인(部印)을 보관하고, 왕의 친서와 국서·영사관 위임장 등 인가장(認可狀)에 관한 사항을 담당했다. 또한 조선 주재 각국 외교관의 알현과 대우, 제반 의식에 관한 사항을 맡았으며 외국인의 서훈(敍勳)과 알현에 관한 사항을 맡았다. 농상공부(農商工部)의 경우에는 박람회에 관한 사항이 포함되었다. 비서관은 이러한 비서과의 업무를 보면서 총리대신이나 각 부 대신을 직접 보좌한 것으로 보인다.

1894년 4월에 마련된 「각부처무규정통칙(各部處務規程通則)」을 보면, 비서과장은 대신이나 협판에게 전달하는 친전(親傳) 문서를 문서과장에게 받아 보고하였다. 일반 문서가 아닌 관리의 신분이나 임명·퇴직에 관한 사항과 기밀 사항은 비서과장이 대신이나 협판에 결재를 직접 요청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미 결재한 문서의 경우 문서과에서 깨끗이 다시 써서 비서과장에게 보내면 대신의 도장을 찍어 문서과로 보냈으며, 기밀문서의 경우는 비서과가 보관하도록 규정되었다.

변천

1896년 내각제가 의정부제로 바뀌면서 총리대신이 의정으로 호칭되자 비서관도 의정비서관으로 불렸다. 의정비서관도 주임관급의 의정비서관으로 1명이 배치되었다. 비서관은 의정관방의 사무를 보면서 관인(官印)을 보관하였다. 1899년 6월부터 궁내부에 국새(國璽)와 어새(御璽)를 보관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내대신(內大臣)을 두게 되자 궁내부 대신 외에 궁내부 내대신에게도 1명의 비서관이 배치되었다. 곧 궁내부에는 궁내부 대신관방비서관(大臣官房秘書官)과 궁내부 내대신비서관(內大臣秘書官) 2명이 있었던 셈이다.

비서관은 1905년 2월 일본 고문관이 주도한 관제 개편 과정에서 각 부에서는 사라지고 내각과 궁내부에만 1명이 배치되었다. 1907년 내각 관제가 마련되면서 다시 각 부에 비서관 1명이 배치되었고, 비서관 제도는 1910년까지 유지되었다.

참고문헌

  • 대한민국국회도서관, 『韓國近代法令資料集 Ⅰ』,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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