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령(副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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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친부 소속의 종5품 봉작명.

개설

부령(副令)이라는 관직명은 고려시대부터 일반 관서에 등장하며, 조선 건국 이후 태종 초 관제 개정 시에 4품으로 내자시·내섬시·봉상시·종부시·내자시·전사시 등의 소속 관직으로 두었다. 1414년(태종 14) 관제 개정 때 내자시 등 소속의 부령은 소윤(少尹)으로 개칭되었으며, 이후 부령은 종친부에만 존재하였다.

세종은 오복(五服)을 기준으로 하고 적서(嫡庶)를 고려하여 2품 이상은 윤(尹), 3품은 정(正), 4품은 령(令), 5품은 감(監), 6품은 장(長)으로 하였다. 세조는 이를 보다 세분화하여 1457년(세조 3)에 정3품은 정, 종3품은 부정(副正), 정4품은 령, 종4품은 부령(副令), 정5품은 감, 종5품은 부감(副監), 정6품은 장으로 하였다. 후에 정4품의 령과 종4품의 부령을 정5품과 종5품으로 내리고 그 대신 정4품의 수(守)와 종4품의 부수(副守)를 신설하였는데, 이것이 『경국대전』에 실렸다. 『경국대전』 「이전(吏典)」 ‘종친부’ 조항에 의하면 부령은 품계(品階)로는 종5품, 종친계(宗親階)로는 근절랑(謹節郞), 신절랑(愼節郞)이었다.

종5품의 부령은 왕자군의 중손(衆孫) 형제 중 양첩(良妾) 출신의 중자(衆子) 형제 가운데 천첩(賤妾) 출신, 왕자군의 중손 형제 중 천첩 출신의 중자 형제 가운데 양첩(良妾) 출신이 처음 받는 봉작이었다.

담당 직무

조선시대 왕의 4대 이내 즉 현손(玄孫)까지는 종친부의 봉작을 받는 대신 정치적, 사회적으로 제한을 받았다. 이는 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은 왕의 유복친(有服親)에게 최고의 명예와 부를 허락하는 대신에 벼슬살이와 정치 활동은 철저하게 금하여 왕권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에서였다. 부령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특별한 직무는 없이 명예직으로 주어졌다.

변천

1869년(고종 6) 1월 종친의 관제 개정 시에 부정·수·부수·령 등과 함께 폐지되었으며, 대신 주부·직장·부직장·봉사·부봉사·참봉 등이 신설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성준, 『한국중세정치법제사 연구』, 일조각, 1985.
  • 정용숙, 『고려왕실족내혼연구』, 새문사, 1988.
  • 김기덕, 「고려시기 왕실의 구성과 근친혼」, 『국사관논총』 49, 1993.
  • 김성준, 「종친부고」, 『사학연구』 18, 1964.
  • 남지대, 「조선초기 예우아문의 성립과 정비」, 『동양학』 24, 1994.
  • 신명호, 「조선초기 왕실 편제에 관한 연구: ‘의친제’의 정착을 중심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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