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옥(反獄)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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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번옥 |
한글표제 | 번옥 |
한자표제 | [反獄] |
관련어 | 반좌(反坐), 대명률(大明律), 소송편(訴訟編), 무고조(誣告條), 난언죄(亂言罪), 고독(蠱毒) |
분야 | 정치/사법/죄목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조지만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번옥([反獄)]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영조실록』 26년 9월 12일 |
형사판결이 뒤집혀 원고가 죄를 받음.
내용
번옥[反獄]은 이미 결정된 형사판결을 뒤집는 것을 뜻한다. 번옥의 결과로 처음 사안을 고한 자인 원고(原告)는 무고(誣告)한 것이 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 타인을 무고(誣告)한 경우에 그 무고한 죄의 내용에 해당하는 형을 내리는 것을 반좌(反坐)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누군가를 살인죄로 무고하였다면 무고한 자에게 살인죄가 적용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대명률』의 「형률(刑律)」 소송편(訴訟編) 무고조(誣告條)에 이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경국대전』의 난언죄(亂言罪)를 처벌하는 조문, 『속대전(續大典)』의 고독(蠱毒)을 제조한 죄를 처벌하는 조문에도 무고인 경우에는 무고한 자에게 반좌를 적용함을 규정하고 있다.
1612년(광해군 4)에는 선조 연간에 아버지를 독살시켰다는 혐의를 받아 신문(訊問) 도중에 죽은 여인의 사안이, 그 아들의 청원에 의해 번옥되어 처음에 고소했던 자들이 신문 중에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부당하게 여긴 신료들이 왕에게 여러 차례 호소했던 사례가 있다. 조선후기에는 당쟁(黨爭)으로 인한 옥사(獄事)가 빈번했는데, 추후에 번옥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1725년(영조 1)에는 1722년 임인년의 옥사를 주도한 소론 영수 김일경(金一鏡) 등에게 옥사가 무고로 인한 것이라고 하여 번옥하였으며, 1746년(영조 22)에도 번옥된 결과 조태구(趙泰耉) 등에게 관직 삭탈이 명해졌다.
용례
掌令任師夏上書言 諫長李濟遠之所陳請 未有一字之開示 噫 辛壬誣獄想來心寒 今旣反獄 則按獄之人 安得免反坐之律 此論之發亦晩矣 其言則是 伏願夬賜允許 答曰 公然起鬧 余實未曉(『영조실록』 26년 9월 12일)
참고문헌
-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