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행전(白行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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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짓가랑이를 좁혀 보행과 행동을 간편하게 하기 위해 정강이에 둘러매는 흰색 천으로 만든 물건.

내용

백행전(白行纏)은 주로 무명이나 모시로 만들어 한복의 바짓부리를 묶게끔 하여 움직일 때 편하도록 한 물건이다. 행전 윗부분 양쪽에 끈을 달아 정강이를 둘러매어 고정하는데, 일명 ‘행등(行縢)’이라고도 한다. 1534년(중종 29) 11월에 제주에서 표류하던 만주(萬珠)가 중국 남경(南京)에서 본 것을 아뢰면서 남경 형조(刑曹)의 관리가 감토(甘吐) 하나, 단의(單衣) 한 벌, 치마 한 벌, 포대(布帶) 하나, 그리고 행등과 버선이 함께 달린 것을 주었다는 기록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중종실록』 29년 11월 24일). 『해행총재(海行摠載)』에 말을 끄는 종인은 무명옷을 입고 행전을 둘렀다고 하여 계급이 낮은 사람들이 주로 한 것으로 보이나, 조선시대 양반들도 예복 착용이나 외출 시에는 행전을 매었다.

국상(國喪) 중에는 왕실의 상주(喪主) 이하 모든 관원(官員)이 생포(生布)로 만든 백행전을 맨다. 이에 사용되는 옷감은 저포 12~15승까지를 사용하였다. 한편 습례(襲禮)에는 백공단 바지와 홑적삼에 백공단 버선을 올리고 남화한단(南華漢緞) 허리띠와 대님을 올리고 다음 백공단 행전을 올린다. 일반적으로 국상에 동원되는 사람들에 대한 상복(喪服)은 나라에서 지급될 것 같으나, 1462년(세조 8) 국상의 기록을 보면 발인반차(發引班次) 대여(大輿)에 동원된 1,000명의 담배군(擔陪軍) 백의(白衣)와 백행전은 스스로 준비하고 백학창(白鶴氅)과 백건(白巾)은 제용감에서 지급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세조실록』 8년 2월 21일).

용례

次大轝(擔陪軍近俱防牌幷一千名 分四運 白衣白行纏自備 白鶴氅白巾濟用監)(『세조실록』 8년 2월 21일)

참고문헌

  • 『해행총재(海行摠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