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절(百種節)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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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백종절 |
한글표제 | 백종절 |
한자표제 | 百種節 |
상위어 | 농경세시(農耕歲時), 삼원일(三元日), 천신(薦新) |
하위어 | 백과(百果), 백종법석(百種法席) |
동의어 | 망혼일(亡魂日), 백중일(白衆日), 백중일(百衆日), 백중절(百中節), 우란분재(盂蘭盆齋), 중원(中元) |
관련어 | 시식(施食), 여제(厲祭), 초제(醮祭) |
분야 | 생활·풍속/풍속/행사 |
유형 | 의식·행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최진아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백종절(百種節)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태종실록』 12년 7월 17일 |
음력 7월 15일로 죽은 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고 머슴을 쉬게 하는 날.
개설
음력 7월 15일은 불교와 도교, 민간에서 죽은 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날이며, 농경 세시에서는 머슴들을 쉬게 하는 날이다. 중원(中元), 우란분재(盂蘭盆齋), 우란분공(盂蘭盆供), 백중(百中), 시식(施食) 등의 이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이날 재를 올리고 조상에게 음식을 바친다. 도교에서는 초제(醮祭)를 지낸다. 국가에서는 이날을 망혼일(亡魂日)이라 하여,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한 여제(厲祭)를 지냈다. 민간에서는 이날을 죽은 자를 위해 제사지내는 날로 여겨 사찰에서 재를 지내거나 혹은 도성으로 내려온 승려에게 조상을 위한 기원을 부탁하였다.
연원 및 변천
백종의 어원은 백 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는다는 백곡지종(百穀之種)의 줄임말이라는 설이 전해지나, 그보다는 도교의 중원절과 불교의 우란분재와 관련 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중원은 도교의 절일인 삼원일(三元日) 중의 하나로서, 정월과 10월의 보름과 함께 도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명절 중의 하나이다. 삼원에는 천상의 선관인 천관(天官), 지관(地官), 수관(水官)이 각각 내려오는 날이다. 이 가운데 중원은 지관이 인간세계에 내려와 죄를 구해 주는 날이기 때문에 음력 7월은 매사에 근신하는 달로 여겨졌다.
불교에서는 이날을 백종법석(百種法席) 혹은 백종(白踵)이라 칭하며, 우란분재를 지낸다.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된 말로 ‘거꾸로 뒤집어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이는 『우란분경(盂蘭盆經)』의 목련존자(木連尊者, 목건련)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목련존자는 신통력이 뛰어났던 석가모니의 제자로, 선정에 들던 중 자신의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목건련이 석가모니에게 어머니의 구원을 청하자, 석가모니는 안거 마지막 날에 승려들이 모여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자자(自恣)를 끝낸 청정한 승려들에게 정성으로 공양을 올리라고 하였다. 그 공덕으로 목건련의 어머니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불교에서는 자자를 끝내는 날에 우란분재를 설행하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졌고, 이날 신도가 승려를 잘 대접하면 그들의 죽은 조상이 지옥에서 극락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신라와 고려시대부터 불교를 숭상해 우란분의 공양(供養) 유속에 따라 의식을 행했다고 하였다.
이날 국가에서는 태일초(太一醮)와 여제를 지냈다. 태일초는 도교의식으로, 태일초례(太一醮禮) 혹은 태일초재(太一醮齋)라 불린다. 태일성이 움직이는 방위에 설치한 태일전(太一殿)이 있는 통주(通州: 현 강원도 통천)와 의성(義城: 현 경상북도 의성) 등에 사람을 파견해 제를 지냈다. 태일초는 이날 외에도 정기적인 의례로 정월 대보름날인 상원(上元)과 10월 보름날인 하원(下元) 그리고 입춘·입하·입추·입동의 사립일(四立日)에도 지냈다. 그 외에도 비정기적으로 기우제 등을 지내기도 하였다. 정기적으로 지내는 태일초 의례는 조선 세종 때까지 활발하게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백중에는 지역 행정 관료가 주축이 되어 여제를 지냈다. 여제는 후손이 없거나 제사 지낼 줄 사람이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 혹은 여러 사정으로 제사를 받을 수 없거나 적이 없는 무사귀신(無祀鬼神)이나 무적귀신(無籍鬼神)을 위한 제사이다. 이러한 혼은 여귀(厲鬼) 혹은 망혼(亡魂)이라 하며, 여기에 명칭을 따와 이날을 망혼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7월 보름날인 중원(中元)과 하원에 예조(禮曹)에서 북교(北郊)에 있는 여단(厲壇)에 사관(祀官)을 파견해 여귀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여제는 그 외에도 양력 4월 5일경인 봄의 청명(淸明)과 음력 10월 1일인 가을의 상달에 정기적으로 제를 지냈다.
절차 및 내용
이날은 승려들이 곳곳에서 조상을 위한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찰을 찾거나 혹은 미처 사찰을 찾지 못한 이들은 도성으로 내려온 승려에게 곡식과 베를 바치며 제사를 드렸다. 도성에서 제장이 될 공간에 기를 세우고 그곳에 탁자를 설치한 뒤에 찬구를 늘어뜨려 놓고 승려들이 경을 외면서 태징[錚]과 북을 치고 죽은 사람들의 혼을 불러 제사하였다. 죽은 조상을 위하려는 사람들은 곡식과 베를 봉안하며 제사하였다.
도교에서는 백종절이 포함된 음력 7월은 귀신의 달로 여긴다. 그때에 지관이 산사람뿐 아니라 죽은 사람의 죄도 구원해 주어 죽은 자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 인간세계를 돌아다닌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로 인해 근신하고 또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을 꺼렸다. 그 예로 1412년(태종 12)에 조선(漕船)을 침몰케 한 전라도 도관찰사이귀산(李貴山)의 사건을 두고 태종이 ‘중국에서 7월에는 배의 운행을 금한다’ 했고, ‘백종에 큰 바람이 있다’고 한 속담을 들어 7월에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으로 공사(公私)의 선척을 바다에 띄우지 못하게 하였다(『태종실록』 12년 7월 17일).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민간에서는 이날을 ‘호미씻이’ 혹은 ‘머슴의 날’이라 부르기도 한다. ‘호미씻이’란 농기구의 일종인 호미를 씻는다는 말로, 농사력에서는 파종과 모내기로 바쁜 일정에서 잠시 하루 쉬어가는 의미를 지닌다. 머슴의 날이라고 해서 농가에서는 머슴들에게 하루 휴가를 주기도 했다. 지역마다 백중에는 놀이를 즐겨, 지역 축제로서 ‘백중놀이’ 행사를 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도잡지(京都雜誌)』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목은선생문집(牧隱先生文集)』
- 『식산집(息山集)』
- 『여지도서(輿地圖書)』
-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삼국·고려시대편』,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신문·잡지편(1876~1945)』, 2003.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전기 문집편』, 2004.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조선후기 문집편』, 200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세시풍속 자료집성: 현대신문편(1946~1970)』, 2006.
- 임동권, 『한국 세시풍속 연구』, 집문당, 1984.
- 김명자, 「한국 세시풍속 연구」,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9.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