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파다병(白磁吧茶甁)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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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백자파다병 |
한글표제 | 백자파다병 |
한자표제 | 白磁吧茶甁 |
상위어 | 백자(白磁) |
분야 | 문화/예술/미술 |
유형 | 물품·도구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박경자 |
재질 | 자기(磁器), 백자(白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백자파다병(白磁吧茶甁)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11년 5월 2일 |
몸통에 주구(注口)와 손잡이가 달린 주자(注子) 형태의 중국식 다병.
개설
백자파다병(白磁吧茶甁)은 중국 명(明)나라 황제인 선덕제(宣德帝)가 조선 왕 세종에게 보낸 하사품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은 개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에 명나라에 사절을 보내 예물을 바치고 이성계(李成桂)의 즉위를 알림으로써 사대(事大)의 예를 행하였다. 명나라는 1402년 영락제(永樂帝) 즉위 후에 조선 왕을 책봉하는 고명과 인신을 보내왔다. 이후 조선에는 명나라 황제의 하사품과 사신의 진상품으로 다양한 종류의 중국 자기가 유입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명대 자기의 유입은 15세기 초 세종 연간에 집중되었으며, 특히 명나라 선덕제는 세종에게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자기를 하사하였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칙서에 기록되었다.
연원 및 변천
세종대에 명나라 선덕제가 사신인 창성(昌盛)과 윤봉(尹鳳)을 통해 세종에게 백자영양다종(白磁羚羊茶鍾) 30개와 백자파다병 15개를 하사하였다(『세종실록』 11년 5월 2일). 백자파다병은 그 구체적인 형태를 알 수 없지만 중국산 백자병으로 구연이 밖으로 벌어진 찻잔인 종(鍾)과 함께 차를 마시는 데 필요한 기종 중의 하나이다. 특히 중국 명나라 선덕 연간에 강서성 경덕진에서 제작된 백자로 ‘대명선덕년제(大明宣德年製)’라는 관지(款識)가 표기된 다기(茶器) 중 손잡이가 달린 찻주전자를 파호(把壺)로 표기하기도 하므로, 백자파다병은 파초가 문양으로 장식된 백자, 또는 손잡이가 달린 주자 형태의 병일 가능성이 있다.
형태
구연이 밖으로 벌어진 병의 몸통에 주구와 손잡이가 달린 주자 형태의 병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방병선,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 이현정, 「15~16세기 朝鮮 白磁에 보이는 明代 磁器의 影響」, 『美術史學硏究』 제270호, 한국미술사학회, 2011.
- 國立古宮博物院, 『也可以淸心-茶器ㆍ茶事ㆍ茶畫』, 臺北,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