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여곡(反餘穀)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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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반여곡 |
한글표제 | 반여곡 |
한자표제 | 反餘穀 |
분야 | 사회/보건·복지/구휼 |
유형 | 법제·정책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문용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반여곡(反餘穀)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정조실록』 1년 3월 14일 |
매 분기마다 창고의 곡식을 조사하여 장부상의 수량과 맞추어 보고 남은 곡식.
내용
각 고을에서 전세나 환곡(還穀)을 징수할 때에는 보관상의 손실을 이유로 일정한 액수를 추가로 징수했다. 본래 환곡에서는 원곡의 1/10을 모곡(耗穀)으로 징수하여 보관상의 손실을 보충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모곡을 국가 재정이나 관아의 비용으로 사용하면서 추가 징수를 하게 되었다. 왕조 정부는 이런 행위를 금했지만 각 지역에서는 규정된 액수 이외의 추가 징수가 공공연히 시행되었다. 그러므로 창고의 곡식을 조사하면 장부상의 숫자보다 많은 것이 당연했다.
이런 상황 아래서 본래 수량을 징수하기도 전에 추가 징수할 액수를 미리 계산하여 다른 용도에 사용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평안도 지역에서 나타난 이런 부정행위는 18세기 후반 정조대에 경상도 지역에서도 나타났다. 이외에도 문서를 잘못 살폈거나, 창고 관리를 담당하는 아전들이 업무를 인수·인계할 때 창고에 있는 곡식의 수량에 축이 나서 부족함이 있을까 염려하여 조치하는 과정에서 반여곡(反餘穀)이 발생했다. 즉 여러 해가 지나 완전하지 못한 쌀 섬 가운데 매 섬에서 두세 말씩 덜어내어 섬을 채워 창고 안에 미리 두었다가 조사할 때가 되어 축난 것이 있으면 보충하고 축난 것이 없으면 남는 것으로 삼은 곡식도 반여곡이라고 했다. 왕조 정부는 이를 부정행위로 보고 금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창고를 관리하는 아전들은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했다.
용례
每年每等 例有反庫 而穀之剩者 謂之反餘穀 或因文書之失察 或因色庫輩 新舊傳掌時 慮有入庫穀數之虧欠 就其年久不完石中 每石除出數三石作石 預置庫中 及其反閱 有縮則補 無縮則爲剩者也(『정조실록』 1년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