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관(朴齊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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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834년(순조 34)~1896년(고종 33) =63]. 조선 후기 철종~고종 때 활동한 문신. 행직은 이조판서(吏曹判書)이다. 자는 치교(致敎)이고, 호는 율암(栗庵)이다.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박호수(朴鎬壽)이며, 어머니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승지(承旨)정관수(鄭觀綏)의 딸이다. 증조부는 돈녕부(敦寧府)판사(判事)박준원(朴準源)이다.

철종 · 고종 시대 활동

1859년(철종 10) 증광시(增廣試)문과(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현령(縣令) 등 지방관을 지냈다. 1867년(고종 4) 경기도 암행어사(京畿道暗行御使)가 되어 탐관오리의 숙청과 우수관리의 표창, 지방 제도 개선 등에 공헌하였다. 1871년(고종 8) 안동부사(安東府使)에서 영해부 안검사(寧海府按檢使)가 되어 민란을 일으킨 이제발(李濟發) 등 민란 관련자 38명을 처형하여 폭동을 진압하였다. 1874년(고종 11) 동래부사(東萊府使)가 되어 이듬해인 1875년(고종 12) 일본 사신 모리야마[森山茂]와 통상을 교섭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에 일본은 운요오호[雲揚號] 등 군함 3척을 부산에 파견하여 연습을 빙자 위협하였다. 그는 민씨파(閔氏派)의 인물로 그 뒤 충청도 관찰사 · 경기도 관찰사 등을 거쳐 이조 판서와 공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묘소와 가족

묘소는 양근(楊根)에 있다. 부인 한산 이씨(韓山李氏)는 이경재(李經在)의 딸이다.

참고문헌

  • 『철종실록(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순종실록(純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 『한국인(韓國人)의 족보(族譜)』
  • 박주대 편저, 「진신팔세보(縉紳八世譜)-文科編」, 『문음진신보(文蔭縉紳譜)』, 려강출판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