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석인(武石人)
sillokwiki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무석인 |
한글표제 | 무석인 |
한자표제 | 武石人 |
동의어 | 무석(武石), 무인석(武人石), 장군석(將軍石) |
관련어 | 마석(馬石), 문석인(文石人) |
분야 | 왕실/왕실의례/흉례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태조~순종 |
집필자 | 정해득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무석인(武石人)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인조실록』 4년 2월 3일 |
능(陵)·원(園)·묘(墓)의 봉분(封墳) 앞에 조성한 무관(武官) 복장의 석인(石人).
내용
통일신라 왕릉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석인상은 문인과 무인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지만 쇠방망이를 들고 있는 석인상을 무석인으로 본다. 갑주(甲冑)를 입고 칼을 쥐거나 잡고 있는 무석인이 등장한 것은 고려 공민왕(恭愍王)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능인 현릉(玄陵)·정릉(正陵)이 처음이다. 건원릉(健元陵)과 헌릉(獻陵)의 무석인은 공민왕릉과 마찬가지로 복발형의 투구를 쓰고 모가리개가 가려져 있는 형상이다.
무석인은 갑주를 입고 양손으로 검(劍)을 잡고 있는 형상으로 조각되는데 이는 국상(國喪) 때의 문무백관을 형상화한 것이다. 무석인은 중계(中階)에 석마(石馬)와 함께 1쌍으로 조성되어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한다. 무석인의 규모는 각 능·원·묘마다 차이가 있으나 허리에 칼집을 차고, 손으로는 칼끝을 아래로 한 검을 잡고 있는 양식은 모두 동일하다.
용례
禮葬都監回啓曰 (중략) 文石人象 著冠帶 執笏之狀 武石人象 著甲冑 佩劍之狀 此乃國喪象文武百官之制也(『인조실록』 4년 2월 3일)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 『춘관통고(春官通考)』
- 경기도박물관, 『경기 묘제 석조 미술』(조선후기 해설편 下), 경기도박물관, 2008.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