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明堂)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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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명당 |
한글표제 | 명당 |
한자표제 | 明堂 |
동의어 | 규국(規局), 야세(野勢) |
관련어 | 명당수(明堂水) |
분야 | 생활·풍속/풍수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김두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명당(明堂)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성종실록』 15년 10월 11일, 『태조실록』 3년 2월 23일 |
풍수에서 혈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들판을 가리키는 말.
개설
명당은 풍수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전반적으로 좋은 땅, 즉 길지를 의미하고, 둘째는 혈 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공간을 말한다. 일반인들은 대개 첫 번째 의미로 사용하나, 풍수 전문서적이나 풍수학인들은 두 번째 의미로 사용한다. 풍수에서 명당을 중시하는 것은 명당의 생김새나 크기를 근거로 하여 그 터의 규모와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용
명당의 본래적 어원은 『대대례(大戴禮)』「명당편(明堂篇)」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천자가 백관의 알현을 받으며 정치를 펴는 넓은 공간을 뜻한다. 그런데 풍수에서는 이를 천자라는 용어 대신 혈처로 바꾸어 사용한다. 즉 혈처 앞에 펼쳐지는 넓은 공간을 명당이라고 한다. 조선조 지관 선발 고시과목인 『명산론(明山論)』은 ‘무릇 명당이라는 것은 그것을 활용하여 천자가 천하 만백성의 조례를 받는 곳’이라고 정의하여 『대대례』의 명당 개념을 차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풍수에서 명당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는 최고의 좋은 땅을 말하며, 둘째는 혈처 앞의 드넓은 들판을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 두 가지 의미가 혼용되고 있다. 예컨대 ‘경복궁은 비록 장려하나 이 도성의 바른 명당은 바로 창덕궁’이라고 언급한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명당은 좋은 터라는 의미로 쓰였다(『성종실록』 15년 10월 11일). 이와 달리 조선초기 무악(毋岳) 천도설을 논하는 자리에서 하윤(河崙)이 ‘무악의 명당이 비록 협착한 듯하다’고 한 데서의 명당은 혈처 앞의 드넓은 들판을 의미한다(『태조실록』 3년 2월 23일). 풍수에서는 엄밀한 의미로 이 두 가지 의미 가운데 후자의 의미로 사용한다.
명당을 본격적 풍수 용어로 사용한 것은 『명산론』이다. 『명산론』은 총 13편 가운데 한 편을 명당에 대해 독립적으로 다룰 만큼 중요시하고 있다. 『의룡경(疑龍經)』은 여러 물들이 모여드는 곳이 명당이라고 정의하면서 진혈(眞穴)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로 삼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적 풍수서인 이중환(李重煥)의『택리지(擇里志)』에서는 명당의 의미로 야세(野勢)란 용어를 쓰고 있다.
조선조 지관 선발 고시과목은 아니나 임진왜란 전후로 조선후기 풍수에 큰 영향을 끼친 『인자수지(人子須知)』 역시 2분법 이외에 그 생김새에 따라 18가지로 분류한다. 그 18가지 가운데 교쇄(交鎖), 주밀(周密), 요포(遶抱), 융취(融聚), 평탄(平坦), 조진(朝進), 광취(廣聚), 관창(寬暢), 대회(大會)는 귀한 명당으로 보았고, 겁살(劫殺), 반배(反背), 질색(窒塞), 경도(傾倒), 핍착(逼窄), 편측(偏側), 파쇄(破碎), 두사(陡瀉), 광야(曠野) 등은 나쁜 명당에 배속시킨다.
명당의 기능에 대해서는 풍수서마다 다양한 주장을 하고 있으나 가장 명확하게 그 기능을 정리한 풍수서는 『명산론』이다. 『명산론』에서는 내명당은 발복의 속도를 주관하며, 외명당은 발복의 대소를 주관하는데, 각각 차등이 있어 일률적으로 정할 수가 없다고 그 기능을 요약한다.
명당의 의미를 현대적 개념으로 표현하면 토지의 하중 능력을 표시한다. 명당은 혈처와 수구 사이의 공간을 말한다. 따라서 명당의 크기는 혈과 수구 간의 거리에 비례한다. 혈과 수구 간의 거리가 짧을수록 혈과 수구 간의 경사도가 가파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반대로 혈과 수구 간의 거리가 멀수록 경사도가 완만하여 좀 더 넓은 공간이 형성된다. 명당이 넓다는 것은 혈처와 수구 사이가 완만하여 생산 활동이 유리함을 의미한다. 반면에 명당이 좁으면 생산 활동에 불리하다. 따라서 명당이 넓고 완만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다. 풍수에서 명당을 중시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까닭에서이다.
변천
명당 용어는 조선초기부터 조선후기까지 큰 변천이 없으나, 18세기에 나온 실학풍수서 『택리지』에서는 명당의 의미로 야세란 용어가 쓰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이 단어가 수용되지는 않는다.
참고문헌
- 「산어룡류편(山語龍類篇)」『산법전서(山法全書)』
- 『지리정종(地理正宗)』
- 김두규, 『우리 풍수이야기』, 북하우스, 2003.
- 서선계·서선술 저, 김동규 역, 『인자수지』, 불교출판사, 1989.
- 양균송 저, 김두규 교감역주, 『감룡경·의룡경』, 비봉출판사, 2009.
- 이중환 저, 이익성 역, 『택리지』, 을유문화사, 1993.
- 채성우 저, 김두규 역해, 『명산론』, 비봉출판사, 2002.
- 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민음사, 1984.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