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반(麥飯)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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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맥반 |
한글표제 | 맥반 |
한자표제 | 麥飯 |
대역어 | 보리밥 |
분야 | 생활·풍속/식생활/음식 |
유형 | 음식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집필자 | 차경희 |
재료 | 보리[麥], 멥쌀[粳米], 물[水] |
계절 | 상시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맥반(麥飯)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조실록』 8년 5월 15일, 『숙종실록』 30년 11월 12일, 『영조실록』 19년 12월 20일 |
보리만으로 밥을 짓거나 보리에 쌀을 섞어 지은 밥.
개설
보리를 푹 삶아 불린 쌀과 함께 섞어 지은 보리밥이다. 보리쌀만으로 꽁보리밥을 짓기도 하고, 보리에 쌀을 섞어 짓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보리를 삼국시대 이후부터 식용하였고, 조선시대에 보리밥은 검박한 삶을 의미하였다.
만드는 법
보리는 쌀에 비해 섬유질이 많아 잘 무르지 않으므로 먼저 삶아야 한다. 보리를 깨끗하게 씻은 후 넉넉히 물을 부어 푹 무르게 삶아 건진다. 쌀은 씻어서 불린 후 솥에 삶아 놓은 보리와 함께 섞어 물을 붓고 끓인다. 처음에는 센 불에서 끓이다가 한소끔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끓이고, 약한 불에서 충분히 뜸을 들인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보리가 완전히 누렇게 여물기 전에 베어 말렸다 타작해서 멥쌀을 섞어 밥을 지으면 잘 익고 맛도 구수하다고 하였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기록된 취맥이숙법(炊麥易熟法) 즉 보리밥을 쉽게 무르게 하는 법에는 보리쌀은 단단하여 잘 익지 않으므로 물에 담갔다 밥을 지으면 쉽게 익고 밥맛도 있고 땔감도 절약할 수 있다고 하였다.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 기록된 보리밥을 짓는 법은 “보리를 잘 씻어 솥에 넣고 물을 맞추어 부은 후 덮개를 덮고 불을 때어 끓이다가 한참 끓거든 불을 그치고 잠깐 있다가 다시 물을 조금 뿌리고 잠깐 더 끓여서 뜸을 들여 푸나니 이는 순 보리로만 하는 것이요. 만일 쌀을 섞으려면 먼저 보리를 1홉쯤 정하게 씻어 삶아서 건져 물을 따라 버리고 솥에 넣고 쌀 5홉을 보리 위에 얹고 물을 맞춰서 붓고 끓이나니라.”고 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보리밥을 지을 때 쌀을 섞어서 하려면 먼저 보리를 삶아서 물을 따라 버리고, 쌀을 씻어 함께 담고 새로 물을 부어 끓여서 뜸을 오래 들였다가 퍼내어 먹되 먼저 보리 삶을 때 통팥을 넣고 함께 삶아 짓는 것이 맛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
연원 및 용도
보리의 원산지는 이란·이라크·터키·이스라엘·시리아 등의 중동 지역으로, 북인도·네팔·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부여를 떠난 주몽(朱蒙)에게 그의 생모인 유화(柳花)가 비둘기 목에 보리씨를 달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와 신라에 큰 우박이 내려 콩과 보리와 같은 작물의 피해가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보리가 보급된 것으로 여겨진다.
보리는 쌀보다 비교적 경작이 용이하다. 냉해에 약하긴 하나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 예나 지금이나 소박한 음식의 표본이 되고 있다. 세조는 성균관 생원(生員) 손비장(孫比長) 등 5인을 불러 전교할 때에 유생(儒生)들에게 어선(御膳)과 맥반(麥飯)을 내려주고, 맥반의 의미를 파악하여 겸손하고 교만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였다(『세조실록』 8년 5월 15일). 숙종대에 홍영(洪泳)의 단(壇) 쌓는 일을 논한 상소에 대한 호조 참판김진규(金鎭圭)의 상소문에서 역시 ‘한 그릇의 맥반도 천신(薦新)하지 못하였는데……’라고 하여 맥반을 하찮은 음식으로 비유하였다(『숙종실록』 30년 11월 12일). 또한 영조는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잠시 어지러운 성중을 피해 남궁(南宮)에 이르렀을 때에 큰 풍우(風雨)를 만나 길가의 빈집에 들어가 불을 피워 놓고 젖은 옷을 말린 다음 맥반을 지어 요기한 고사(故事)를 인용하면서, 즉 어지러운 난세에 힘든 환경을 견디며 극복하여 훗날을 도모할 인재가 되지 못함을 비유할 때 맥반을 예로 들었다(『영조실록』 19년 12월 20일).
이런 맥반의 의미는 사대부들의 문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윤선도(尹善道)는 『고산유고(孤山遺稿)』에서 「밥상을 마주하고[對案]」라는 시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뜻을 전했다.
앞산에 비온 뒤에 돋아나는 고사리 싹 / 前山雨後蕨芽新
밥 짓는 아낙이여 봄 왔으니 얼굴 펴오 / 饌婦春來莫更顰
샘물 가득 떠서 보리밥 말아 먹으면 / 滿酌玉泉和麥飯
유인의 살림살이 가난하지 않다오 / 幽人活計不爲貧
정약용(丁若鏞)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서도 「여름날에 소회를 적어 족부(族父)인 이조 참판에게 올리다[夏日述懷 奉簡族父吏曹參判]」는 글에서 “명아줏국 서둘러 주발에 푸고[藜羹催瀉碗] / 보리밥 사발에 수북해 좋다네[麥飯喜盈盂].”라고 했고, 「장기농가(長鬐農歌)」에서도 “상추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는[萵葉團包麥飯呑] /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合同椒醬與葱根]”라고 하였다.
『일성록(日省錄)』에 의하면, 보리밥은 약용으로도 쓰였다. 영조가 병환 때문에 약방의 문안계사(問安啓辭)에 답하기를, “맥반을 붙여 둔 곳은 좀 나았지만 아직도 남은 기운이 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보리밥을 환부에 붙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온주법(醞酒法)』에 옷에 먹물이 묻은 것은 따뜻한 보리밥이나 뜨거운 초로 지운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일성록(日省錄)』
- 『고산유고(孤山遺稿)』
-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 『온주법(醞酒法)』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