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탕(豆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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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팥을 삶아 으깨서 거른 물에 쌀이나 새알심을 넣어 쑨 죽.

개설

붉은 팥을 무르게 삶아 으깬 후 걸러 앙금을 앉히고, 그 웃물과 쌀로 죽을 쑤다가 팥 앙금을 넣어 어우러지게 쑨 죽이다. 민간에서는 동짓날의 액막이 음식으로 주로 팥죽을 먹었으며, 궁중에서는 더운 삼복에도 더위를 이기고, 질병을 물리치기 위한 복날 음식으로 먹었다.

만드는 법

팥은 씻어서 팥이 잠길 정도의 물을 부어 한소끔 끓으면 물을 따라 버리고 다시 팥이 충분히 잠길 정도의 물을 부어 푹 무를 때까지 삶는다. 삶은 팥이 뜨거울 때 나무 주걱으로 대강 으깨면서 체에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며 걸러서 체에 남는 껍질은 버리고 앙금은 가라앉힌다. 찹쌀가루는 뜨거운 물에 소금을 조금 타서 부어 익반죽한 후 지름 1㎝ 정도로 동그랗게 새알심을 빚는다. 이때 생강즙으로 찹쌀가루 반죽을 하기도 한다. 솥에 팥 앙금 가라앉힌 웃물을 따라서 붓고 불린 멥쌀을 함께 넣어 끓인다. 가끔 저으면서 쌀알이 완전히 퍼지면 가라앉힌 팥 앙금을 넣어 저으면서 잘 어우러지게 끓인다, 약한 불로 서서히 끓여야 팥의 붉은색이 더 곱다. 죽이 어우러지면 새알심을 넣는다. 새알심이 익어서 위로 떠오르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먹을 때 설탕이나 꿀을 넣어 먹는다.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적두죽(赤豆粥)을 쑤는 방법으로 “팥을 삶아 익혀 짓이겨 멥쌀을 빻은 쌀가루와 같이 죽을 끓인다. 찹쌀가루를 새알 모양으로 빚어 죽에 집어넣고 다시 끓여 꿀을 타서 먹는다. 이날 문짝에 팥죽을 뿌려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고 하였다. 또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두죽은 큰 통노구에 고되, 대추를 많이 넣고 새알심을 강즙하여 반죽한다.”고 하였다.

연원 및 용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하면 “상례(喪禮) 때 밥을 먹을 수 없으니 죽(粥)을 먹는데, 죽을 묽게 하여 탕(湯)이라고도 한다. 음료로 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상화나 고추장을 만들 때의 농도를 ‘아주 된 콩죽처럼’이라고 하여 평상시에는 비교적 농도가 진한 죽을 이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만기요람(萬機要覽)』에는 두탕(豆湯)에 쓰는 재료가 모두 붉은 팥[赤豆]이 많은 것으로 보아 두탕이 팥죽임을 알 수 있다.

문종은 종기(瘇氣)가 나서 아팠다가 비로소 농즙(濃汁)이 흘러나온 후 내의(內醫) 전순의(全循義)가 올린 두탕을 먹고 기뻐하였다(『문종실록』 2년 5월 5일). 성종대에 궁궐에서 내보낸 어서(御書)의 한 소간(小簡)에 늘 공상(供上)하는 두탕이나 타락(駝駱)은 모두 그 양을 줄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궐 밖의 솜씨 좋은 곳에서 만들어서 들여온 곳으로 판단된다(『성종실록』 12년 7월 13일).

『주식방문(酒食方文)』에서도 고추장을 만들 때 질고 되기는 상인이 파는 된 콩죽만큼 하면 좋다고 하였다고 하여 콩죽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고, 또 시장에서 팔리고 있어 손쉽게 사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팥죽은 이색(李穡)의 『목은집(牧隱集)』에 남긴 「팥죽을 먹다[豆粥]」라는 시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철에 궁중에서 일을 하며 끼니로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색은 팥죽에 꿀을 타서 달게 하여 먹었다. 『사가집(四佳集)』의 「하일(夏日)」이라는 시를 보면, 서거정(徐居正)도 팥죽을 달게 먹었다.

하일(夏日)

청풍이 솔솔 불어올 제 처마 앞에 누워서 / 淸風院落臥前簷

뜻대로 읊조리니 흥취가 더욱 진진해지네. / 隨意吟哦興轉添

차조 술 야자 잔에 향기는 다시 절묘하고 / 秫酒椰杯香更妙

팥죽이랑 석청의 맛은 새로이 달콤하여라. / 豆湯崖蜜味新甛

우수수 대나무 소리는 마냥 섬돌을 울리고 / 竹聲瑣碎長留砌

무성한 꽃 그림자는 발 안에 반쯤 들었네. / 花影扶疎半入簾

나는 문 닫고 곧장 내대자를 사절하고 / 閉閣直揮褦襶子

동쪽 산마루에 달 오르기만 기다리노라. / 待看東嶺上銀蟾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못난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 죽어 전염병을 옮기고 다니는 귀신이 되었다. 그 아이의 혼이 붉은 팥을 무서워하였기 때문에 동짓날 팥죽을 쑤어 마을 어귀와 각 집의 대문과 방, 장독, 헛간, 우물 등 여러 곳에 놓아 역귀를 물리쳤다고 한다.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에는 음식 금기로 잉어와 팥죽을 먹지 말라고 기록하였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는 적소두죽(赤小豆粥)은 이뇨와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인 소수종, 각기병에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규합총서(閨閤叢書)』
  •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 『만기요람(萬機要覽)』
  • 『목은집(牧隱集)』
  • 『사가집(四佳集)』
  • 『윤씨음식법(尹氏飮食法)』
  •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 『주식방문(酒食方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