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락(斗落)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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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두락 |
한글표제 | 두락 |
한자표제 | 斗落 |
상위어 | 섬[石]지기 |
하위어 | 되[升]지기 |
동의어 | 마지기, 두락지(斗落地) |
관련어 | 경무법(頃畝法), 야미(夜味), 일경(日耕), 결부(結負) |
분야 | 경제/도량형 |
유형 | 개념용어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송양섭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두락(斗落) |
조선시대 논·밭의 면적을 나타내는 단위.
개설
두락(斗落)은 우리말로 마지기라고 한다. 1두락은 한 말[斗]의 종자를 파종할 만한 면적을 뜻하는 것으로 대략 200~300평 사이이다. 최근에는 벼 4석을 수확할 수 있는 면적으로 마지기를 칭하기도 한다. 두락지(斗落地)와 같은 면적 표시 단위로는 1석(石)을 파종할 만한 면적인 섬지기와 1승(升)을 파종할 수 있는 되지기가 있다.
내용 및 특징
두락이 한 말의 종자를 뿌릴 수 있는 토지라고 하지만 그 면적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다. 두락의 면적은 지목별·지역별로 차이가 있었다. 논의 경우는 80평에서 300평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형의 두락이 존재하지만 그중에 대부분의 두락은 약 200평을 적용하였다. 밭의 경우에는 논에 비해서 다양한 면적의 두락이 적용되었다. 밭 두락은 30평에서 400평까지 다양한 유형이 적용되었고 역시 200평이 가장 많이 적용되기는 했으나 그 비율이 높지 않고, 100평, 300평, 500평 등 다양한 면적이 적용되었다. 이는 밭의 경우 산간지대나 구릉지에 위치하여 논처럼 평탄하고 고르지 않아 파종을 일정하게 할 수 없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대면적의 차이는 두락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두락의 절대면적은 시기에 따라 변하기도 하였다. 농업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단위면적당 파종하는 씨앗의 양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한 말의 씨앗을 파종하는 두락의 면적은 넓어진 것이다.
변천
예로부터 토지의 면적을 나타내는 용어는 다양하였다. 중국 고대에서부터 사용되던 면적 단위법으로는 경무법(頃畝法)이 있다. 경무법은 전한(前漢) 시대에는 주척(周尺)으로 6자 평방을 1보(步), 100보를 1무(畝), 100무를 1경(頃) 또는 1부(夫)라 하였고, 한나라 이후에는 주척 5자 평방을 1보, 240보를 1무, 100무를 1경으로 하였다. 결부법은 화곡(禾穀) 1악(握)을 1파(把), 10파를 1속(束), 10속을 1부(負), 100부를 1결(結)이라 하고, 1결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전지의 면적을 표시한 것이다. 결부법이 세금 부과를 위주로 한 데 반하여, 경무법은 주로 토지를 파악하는 데 그 목적을 둔 것이었다. 결부법은 고정된 지적의 표시 단위가 아니라, 수확의 표준·수세의 표준을 나타내는 단위였으므로 농간의 여지가 많아 유형원과 정약용 같은 경세론자들은 경무법 채택을 주장하였다. 이와 별도로 화전(火田)과 같이 크기나 형태가 불규칙하여 계량이 어려운 토지에는 하루 동안 갈 수 있는 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일경(日耕)이 쓰이기도 하였다.
두락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483년(성종 14)이다. 두락은 토지를 파종 면적을 기준으로 면적을 표시하면서 토지의 절대면적에 오차 범위가 크지 않아 일정 부분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형태의 토지에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로 인해 민간에서 일상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던 면적 표시 단위였다. 이와 함께 논 면적을 나타낼 때 야미(夜味)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금양잡록(衿陽雜錄)』
- 김용섭, 『조선후기농업사연구』1, 일조각, 1970.
- 김용섭, 『조선후기농업사연구』2, 일조각, 1971.
- 이영훈,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 한국농업사학회, 『조선시대 농업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