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역(洞仙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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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황해도 지역의 역도 중 하나인 금교도에 속한 역.

개설

동선역(洞仙驛)은 고려시대에는 서해도의 역도(驛道)인 절령도(岊嶺道)에 소속되어 개경과 서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전국적으로 역도와 역로 조직이 정비되면서 세종대에 황해도 참로찰방에 소속되었다. 세조대에는 자비령(慈悲嶺)을 넘어 개성과 평양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폐지되면서 황주에서 봉산으로 이설되었다.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성종대 반포된 『경국대전』에서는 금교도(金郊道)에 소속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 초기의 6과(科)-147역(驛) 체제에서는 서해도(西海道) 황주(黃州)에 위치하였으며, 1과로 분류되어 정인(丁人) 75명이 배속되었다. 이후 성종에서 인종 연간에 걸쳐 고려의 역제(驛制)가 22역도-525속역(屬驛) 체제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절령도에 소속되어 개경과 서경을 오가는 교통로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로 가는 사신의 사행로로 이용되었다.

조직 및 역할

조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황해도 조를 살펴보면, 역명이 동선참(洞仙站)으로 바뀌어 금교역에 소속된 이후에 역졸 32명과 역마 9필을 나누어 배치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465년(세조 11)에는 형조에서, 동선역을 비롯해 흥의역(興義驛)·보산역(寶山驛) 등은 명나라 사신이 왕래하는 사행로에 위치해 있는데도 공역(供役)하는 노비가 적어 몹시 쇠퇴하였으므로 역 근처에 있는 관청의 노비를 지급할 것을 건의하였다(『세조실록』 11년 6월 11일). 이를 통해 동선역이 사행로의 기능을 담당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과중한 재정적 부담을 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변천

조선 건국 후 전국적으로 역도와 역로 조직이 정비되면서 동선역은 풍해도찰방에 편제되었다. 이후 1413년(태종 13) 풍해도찰방이 동선보산도역승(洞仙寶山道驛丞), 1415년(태종 15)에는 금교경천도관승(金郊敬天道館丞), 1417년(태종 17) 황해도 참로찰방으로 개칭되었는데 이 같은 소속 역도의 개칭 결과 태종 이후부터 세종대까지 동선역은 황해도 참로찰방에 소속되었다[『세종실록』 지리지 황해도].

이후 1462년(세조 8)에는 찰방이 관할하는 역이 많고 역 사이의 거리가 멀어 제대로 순시하지 못하는 등 각종 폐단이 발생하자 대대적으로 역로를 개편했는데, 이때 동선역은 기존과 같이 황해도 참로찰방에 소속되었다. 이후 성종대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이 반포되면서 확정된 조선시대 전기의 역도 체제에서 동선역은 금교도의 속역으로 편제되었다. 따라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1462년에 단행된 역로 정비 이후 동선역은 황해도 참로찰방에서 금교도로 편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1432년(세종 14)에 명나라 사신은 자비령을 우회하는 역로를 이용하게 하고, 명나라로 가는 조선 사신은 자비령을 넘어가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에 따라 동선역을 비롯해 절령역(岊嶺驛)과 경천역(敬天驛) 등을 자비령의 우회로로 옮기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그러나 당시 황해도 지역은 명나라 사신의 왕래로 인해 많은 부담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안정된 뒤에 역을 옮기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면서(『세종실록』 14년 4월 13일) 역의 위치를 옮기는 논의가 중단되었으나, 1457년(세조 3)에 황해도 봉산(鳳山) 입석리(入石里)로 이설되었다.(『세조실록』 3년 4월 24일).

이러한 사실은 조선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여지도서』 황해도 봉산조에 따르면, 동선역은 옛날 황주 절령로에 있었으나 지금의 봉주로 옮겨 동선참으로 명칭이 바뀌어 금교역에 속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동선역이 동선참으로 개칭되었다기보다는 조선시대 한양-의주간의 역로상의 역 중에 황해도에 위치한 지역을 총칭하는 보통명사로 참(站)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기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조병로, 『한국근세 역제사연구』, 국학자료원, 2005.
  • 정요근, 「조선초기 역로망의 전국적 재편」, 『조선시대사학보』4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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