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순변사(都巡邊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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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외방의 군대를 통솔하기 위해 파견했던 임시 관직.

개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먼저 이일(李鎰)을 순변사(巡邊使)에 임명하고 정예병을 이끌고 경상도 상주(尙州)에 내려가 적을 막도록 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기세가 대단하여 대신을 도체찰사로 삼아 장수들을 감독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병력을 거느린 장군을 파견해서 이일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방침이 정해짐에 따라 신립(申砬)에게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를 제수하였다. 이로써 접전 지역에 군대를 거느리고 투입되는 무장에게 주어지던 최고위급의 임시 직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담당 직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중앙에서는 우선 이일을 순변사에 임명하고 정예병을 이끌고 경상도 상주에 내려가 적을 막도록 했다(『선조실록』 25년 4월 17일). 당시 지방군 운용 전술이었던 제승방략(制勝方略)에 의거해서 현지에서는 병력을 동원하고, 중앙에서 보낸 장수는 이들을 거느리고 출동해서 적을 공격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 당시 중앙에서 보내는 장수가 이일이었고 그의 직임이 순변사였다.

그런데 일본군의 위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다시 신립을 삼도순변사에 제수하고서 이일 이하 모두 그의 명을 따르되 만약 듣지 않는 자가 있으면 처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아울러 중앙과 외방의 정예군과 자문감(紫門監)의 군기도 있는 대로 사용하도록 허용했다(『선조실록』 25년 4월 17일).

이를 통해 신립에게 접전 지역에서의 전투를 실질적으로 총지휘할 수 있는 권한과 병력, 무기까지 지급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의 직책이 삼도순변사였다는 것은 그 범위는 하삼도에 국한했음을 의미했다. 일단 일본군과의 접전 지역에 국한시켰다. 현실적으로 전투에 투입되는 무장에게 주어지는 최고위급의 임시 직책으로 여겨진다. 그 위에 대신에게 제수되는 도체찰사(都體察使)가 있었지만 그는 전투 요원이 아니라 최고 전쟁 지도자였다. 그런 점에서 무장이 임명되는 순변사와 달랐다.

변천

『선조실록』의 기사와 똑같은 내용이나 부분적으로 표현이 달랐던 것이 『선조수정실록』의 기사였다. 이에 따르면 대간에서 대신을 체찰사로 삼아 여러 장수들을 검독(檢督)하게 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유성룡(柳成龍)을 보내도록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대표적인 무장(武將)이었던 신립은 체찰사는 전투하는 장수가 아니므로 이일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장군을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마침내 유성룡의 건의로 신립을 먼저 보내되 도순변사(都巡邊使)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집한 장사(壯士) 8,000명을 신입에게 소속시키고 이일 이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모두 참(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선조수정실록』 25년 4월 14일).

즉 『선조실록』에서는 삼도순변사로 표현되었고, 『선조수정실록』에서는 도순변사로 불리었다. 어느 것이 정확한 표현인지 알기 어렵다. 다만 신립 이외에 도순변사에 임명된 사람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자가 올바른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일이 먼저 순변사로 파견되었고, 직책상 그보다 상관으로 신립 또한 나갔으므로 그것을 명확하게 나타내고자 도순변사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관계망